참여학생수기

국제인턴십 참가 수기(영문과 3년 한소영)

국제인턴십 참가 수기(영문과 3년 한소영)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수업을 듣고 있던 날, 교수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해외인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하루 종일 남았고 고민 없이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에 바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해외인턴에 선발이 되었고, 다들 놀 거리가 많고 여행하기 좋은 샌디에고의 회사에 지원할 때 나는 NGO, 이 비정부기구라는 단어에 이끌려 태어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솔트레이크시티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하루가 꼬박 걸려 도착한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에는 집주인 Kathie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의 미국 생활을 시작되었다. 다음 날에는 Kathie를 따라 앞으로 일하게 될 비영리 난민구호단체(IRC)가서 정식으로 Nolan의 Employment 팀 인턴이 되었다.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의 사용방법에 대해 배웠다. 아직 시차적응도 못한 터라,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른 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차츰 IRC에 적응해 갈 때, 북한 난민 피복실씨가 IRC의 새로운 난민으로 들어왔다. 북한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고, 또 정말 신기했다. 동시에 내가 이 분이 여기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나는 그 분의 모든 일을 함께 하였다. IRC와 약속을 잡는 것부터 여러 Orientation 통역까지. 처음에 대부분 통역을 맡아했지만 난생 처음해보는 통역이라 서툴 때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영어실력과 함께 통역도 능숙하게 해냈다.

IRC에는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포함하여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분은 직원으로서 난민들의 영어교육을 맡았기 때문에 항상 바빴다. 그래서 북한 난민들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직원들이 항상 나를 찾았다. 내가 속해있는 Employment 팀이라는 곳은 난민들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나는 거기에 통역 일까지 맡아서 나의 팀에서 가장 바쁜 인턴이었던 것 같다. 또한 통역을 하면서 IRC의 여러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중에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IRC를 떠나기 이틀 전에는 피복실씨가 미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난민증과 고용카드를 받을 수 있었고, 호텔 매니저 Brett의 도움으로 house attendant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날까지 은행계좌를 만들고 호텔에 제출하는 것을 끝으로 나의 IRC에서 인턴생활은 마무리 되었다.

사실상 내가 인턴십을 시작하기 전에 이루고자했던 목표들을 모두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정말 많은 분들의 감사한 도움들이 함께하였다. 그리고 북한난민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난민들을 만나볼 수 있고, 그들에게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며, 도와줄 수 있음에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인턴생활이 아닌 미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솔트레이크시티는 정말 한적하고 조용한 도시였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 정말 미국스러움을 기대하고 온 나에게는 너무 심심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 곳 사람들은 항상 친절했고 날씨는 항상 맑았으며 거리는 깨끗했던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국으로 선교 사업을 갔다 온 백인친구들을 만나면서 함께 즉흥적으로 라스베가스에 갈 정도로 친해졌다. 미국에서 한국말을 잘 하는 백인친구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지만 라스베가스에 가서도 한인음식점만 찾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아마 이 친구들 덕분에 나의 미국생활이 한층 더 재미있어졌던 것 같다. 나중에는 친구들의 소개로 더 많은 미국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쉬웠던 만남이었던 것 같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항상 ‘내가 이 친구들을 조금 더 빨리 만났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졌던 두 달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짧았던 만큼 더 애틋했고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말을 정말 잘 했던 미국친구들과 교포친구들. 그리고 나에게 처음으로 한국식 집밥을 만들어 준 IRC의 유일한 한국인 미라언니 그리고 남편 션, 강아지 페페. 나와 함께 Employment 팀에서 일하면서 잘 맞고 나의 이야기에 잘 웃어주던 Stella. 나의 파트너 Olivia. 또 처음 IRC에 와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도와 준, 미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된 Chris. 그리고 정말 우리 할머니처럼 나를 dear이라 불러주며 챙겨주셨던 집주인 할머니 Kathie.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정말 내가 새로운 문화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나의 미국에서의 삶을 꽉 채워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솔트레이크시티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게는 샌디에고와 솔트레이크시티 중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왜 샌디에고에 가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처음에는 내가 샌디에고가 아닌 들어보지도 못한 솔트레이크시티를 선택한 것이 내 인생 최대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하게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샌디에고를 선택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백인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조금 더 미국스러운 문화와 느낌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사과 또한 아끼지 않았다. 항상 예의 바르고, 남을 도와주는데 적극적이었으며 따뜻했던 것 같다. 그 곳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인턴이 끝나고 나서 혼자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서 정말 그 차이점이 극명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다시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오기 전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으면 경험을 쌓는다는 핑계로 아직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이 생겼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깨달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체험수기를 끝 마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