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학생수기

코어사업단의 국내,해외 인턴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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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현장학습 - 이우를 다녀와서(중문과 3년 전은지)

지난 1월 인문대 코어사업단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 ‘국제무역현장학습’을 통해서 일주일 동안 중국 이우(义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무역현장학습을 신청하기 전까지는 이우라는 도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우와 함께 절강성(浙江省)에 위치해 있는 온주(温州)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 지명을 몇 번 들어본 것을 제외하고는 저에게 아주 생소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지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간단하게 사전 조사를 하면서 이우가 어떤 도시인지에 대하여 알아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매 시장인 ‘푸텐 시장’이 존재하고 한국인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상인들이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국내 공산품의 약 70%가 이우 시장에서 도매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습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전 세계 상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우 시장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 곳에 가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국제무역현장학습을 지원하게 되었고 운 좋게 기회를 얻어서 이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우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무역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시장조사도 하고, 현지 물류 창고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푸텐 시장에서 직접 시장조사를 했던 것입니다. 무역현장학습을 가기 전 자신들이 관심 있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섯 가지 제품을 선정하여 국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소매가 및 도매가를 조사하는 과제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우에서 그 과제를 바탕으로 관심 카테고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조를 이루어서 시장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 카테고리는 액세서리였고 저희 조는 액세서리 중에서 귀걸이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조사를 하기 전에 ‘최소주문량’, ‘도매가’와 같이 기본적으로 알아둬야 할 몇 가지 단어들을 배우고 바로 실전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가게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는 것이 두려웠고 망설여져서 가게 근처를 서성이며 귀걸이를 구경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용기를 내어 말을 한두 마디씩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그 뒤로 문제없이 시장조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멘토님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희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구매하는 입장이었던 제가 시장조사를 통해서 ‘어떤 디자인의 제품이 많이 팔릴까?’, ‘이 제품은 얼마에 팔아야 적절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판매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푸텐 시장은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액세서리는 제1구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조는 시장조사를 하는 이틀 동안 한인회 사무실이 있는 4구역부터 1구역까지 직접 걸어가야 했는데 왕복 약 두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다리가 아팠던 만큼 푸텐 시장의 규모가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엄청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4구역과 1구역을 오고가는 과정에서 매우 다양한 제품군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푸텐 시장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이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왜 전 세계 상인들이 이곳으로 오려고 하는지 그 궁금증이 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우에서 일주일 동안 했던 활동들을 모두 다 적지는 못했지만 그 중 이우 한인 상인회 멘토님들께서 해주신 무역 강의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무역 전문 지식과 더불어 본인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4학년이 되는 저의 입장에서 앞으로의 진로 선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국제무역현장학습은 저에게 있어서 단순한 무역 현장 학습이 아니라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해준 좋은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무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드시 무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권유하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사진: 2조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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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에서의 느낌(신문방송학과 4년 임소윤)

이우로 다녀온 무역현장학습은 사실 내가 관심 있던 콘텐츠무역과는 거리가 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그래도 같은 무역이라면, 또 콘텐츠무역에 있어서도 중국이 중요한 만큼 이번 현장학습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나자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고 과연 내가 중국어로 실무를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두 번째 이유였다.

사실 강의 내용은 거의 실물무역에 관한 것이어서 콘텐츠무역과 관련해서 정보를 얻긴 힘들었지만 이번 현장학습에 참여해서 얻어간 것도 많다. 무역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새로운 분야에 대해 현지 종사자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의 경험담과 인생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이우시장과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인간극장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나할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만큼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겼다. 한국에 돌아가면 빨리 계획했던 걸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하니 설렘과 기대감이 생겼다.

또 이우시장의 중국 상인들을 비롯해 이우에서 생활하면서 만난 중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았다.(어법에 따라 정확하게 구사했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서로 소통이 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중국어로 실무를 보기 위해서는 더 공부를 해야겠지만, 과연 나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중국어로 실무를 보는 직무에 지원해도 될까? 라고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기대했던 현장학습과 100프로 일치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얻어가는 것이 컸던 프로그램이었다. 무역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더더욱 얻어가는 것이 큰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많은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유익한 일주일을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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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 현장실습에서의 통역 경험(중문과 1년 장은경)

이번 국제무역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통해서 저의 통역에 대해 좀 더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품의 최소수량을 통해서 금액을 좀 더 적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예) 이 브로치 하나의 가격은 18원입니다. 최소수량은 120단입니다. 한 단에 12개 있습니다. 500단을 사면 이 브로치 한 개를 2원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사진>

이런 통역도 해 보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통역하는 동안 사람의 기분과 어떤 방식으로 해야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더 좋은 의사소통이 될 수 있을지 더 많은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이런 경험과 경력이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쌓일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참가 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안동환 교수님, 김태완 교수님 수고 많았습니다. 많은 추억과 경험이 좀 더 쌓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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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실무를 배운 7일간의 시간(중문과 3년 임청희)

참여수기를 쓰기에 앞서 해외현장학습에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이우 한인회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우에 머무는 7일간의 시간 동안 정말 도움을 많이 주셨고, 실제로 무역에 종사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실질적 무역실무를 배울 수 있었고, 중국에 사는 삶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간 무엇을 배울까? 설레기도 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공존해 있었습니다. 이우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무역에 관한 실무교육이 시작되고, 거대한 무역 시장인 국제상무성을 돌아다니니 가슴이 뛰고 실제 무역에 뛰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전에는 교육, 오후에는 현장에 다니면서 오전에 교육했던 것을 느끼고 실행한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중국 이우에 가기 전에 교수님께서 상품선정을 해오라고 하셨을 때 정말 당황을 많이 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현장에 가서 직접 보니 사전조사가 정말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전조사를 한 사전조사제품에 대해 실제 무역업에 종사하시는 분께 알려드리고 직접 유사제품을 찾았을 때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고, 들떠있었습니다.

다음날 교육에는 관세나 부가세, 또 운임까지 계산에 보니 조금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회사에서 실제 사용하는 서식까지 내어주신 한인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무역실무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좋았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인회에서 시행하는 수업을 통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실질적 실무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중 FTA 및 물건에 대한 관세와 부가세, 운임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과 용어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전 수업뿐만 아니라 이우에 있는 실제 기업탐방을 하고 물건이 어떻게 이동이 되는지 알게 되어 무역에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하고 그 영역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참가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느꼈습니다. 앞으로 무역에 대해 알고 싶거나 배울 생각이 있다면 이우현장학습프로그램을 정말 정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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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현장학습 속 ‘깨달음’(중문과 3년 염지영)

첫날에는 이우시 박람회장을 방문하여 영상자료를 시청하고 큐레이터분의 설명을 들었다. 이우에 오기 전에 간략하게 조사했었지만, 직접 가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나니 이우시가 세계적인 일용품의 중심지로 경제적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도시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준비 과제를 토대로 하여 조를 나누었고, 멘토님과 함께 앞으로 시장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모임을 가졌다.

드디어 시장 조사를 직접 하기로 한 둘째 날이 되었고 매우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오전에 간단하게 무역이론과 시장조사에 대해서 멘토분들의 설명을 들었다. 생소한 단어지만 批发价(도매가), 起订量(최소 주문량), 付款条件(지급조건)과 같은 단어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첫 시장조사를 나섰다. 생각보다 이우에 있는 상점 주인들은 매우 친절했고 가격 네고를 할 때에도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나선 두 번째 시장조사에서도 어려움 없이 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고, 소매를 하는 상점에서 가격을 흥정하여 귀걸이를 사는 재미있는 경험도 하였다.

一打에 12개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대부분의 악세사리 최소 주문량은 一打라는 것도 시장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점은 이우 악세사리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보게 된 많은 한국인분들이었다. 그 분들은 이우에서 귀걸이를 주문해서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이었고 그분들이 가격 네고를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시장조사 외에도 담당자분들의 물류이론 및 실무나 아이템개발 및 제작 관련 교육도 매우 인상 깊었다. 이번 학기에 경영학부의 무역학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던 내용들을 직접 무역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역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입 절차, 결제 방법 및 신용장 그리고 인증 제도와 안전 확인 제도 등 복잡하지만 꼭 알아야할 것들에 대해서 배우면서 정말 유익한 무역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역 현장학습을 통해 느낀 점은 총 2가지다. 첫 번째는,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시장 조사를 하면서 많은 상점을 돌아다니는데 첫 상점에 들어가기까지가 굉장히 오래 걸렸다. 막상 들어가서 조사를 하려고 하니 발도 입도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무작정 들어가서 가격 네고를 하다 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만 내서 도전 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중국 이우에 무역 현장학습을 하러 왔지만 삶의 지혜를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우 한인 상인회분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 분들의 삶의 굴곡 이야기를 들으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계획할 수 있는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국은 매우 넓고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항상 문장으로만 보았다면, 이우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값진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이우한국상인회의 재정부 국장을 맡고 계신 최웅기 국장님의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우리가 이우에 있는 6박 7일 동안 대박 상품을 알고 간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라고 하셨다. 무역 현장실습동안 무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배워갈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더욱 더 단련시키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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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무역현장학습 참가수기(중문과 3년 박수진)

2018년 1월의 초반을 이우무역현장학습으로 보냈습니다. 올해로 4학년이 된 저에게는 의미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무역관련 수업, 책등을 보고 막연하게 글로만 접했던 무역에 대해서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시기적절하게 코어사업단에서 이우무역현장학습 참가자를 모집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만 접했던 무역은 해상보험, 포워딩, 신용장 등등 복잡하고 어려워 심층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우에서 제가 직접 다양한 현장을 보고, 거래시뮬레이션도 하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멘토님들의 강연을 들어보니 7일간 점차적으로 무역이라는 것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혼자서는 해보지 못할 많은 기회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역상무성에서 상인들과의 거래진행과정, 물류회사의 업무과정, 무역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강연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환학생 이후에 처음으로 방문한 중국, 그중에서도 이우는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귀국하기 아쉬울 정도로 정이 많이 든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우에서 무역에 종사하시는 멘토님들 또한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저희를 위해 실무교육과 현장교육을 해주시고, 인생에 있어 필요한 많은 조언들을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프로그램은 여러 방면으로 정말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더 키울 수 있었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자극제로 남을 추억이 되었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해외를 방문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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义乌欢迎您 이우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중문3 박세윤)

2018년도 1월 3일부터 9일까지 이우시에서 진행된 국제무역현장학습 기간 동안 국제상무성에 위치한 이우한인회에서 일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첫 날에는 어색했던 이 공간이 떠날 때 쯤에는 꽤나 익숙해졌었다.

 첫 날 우리 조는 악세사리, 공예품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모였고, 우리 조의 멘토님은 구희완 부회장님께서 맡아주셨다. 조끼리 처음 모였을 때 이우에 온 이유와 목표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알차고 의미 있는 현장학습이 될 수 있도록 의기투합을 했다. 구희완 멘토님께서 ‘이우의 무역은 택배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국내 택배가 2-3일 만에 도착하는 것처럼 중국 이우에서 한국까지 고작 3일이면 물건이 도착한다고 한다. 국제 거래는 최소 몇 주부터 몇 달이 걸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신속함이었다.

교육시간마다 각자 본인의 사업을 하고 계시는 사장님들께서 실무에 쓰이는 지식들을 전달해주셨다. 그 중 FTA, 선적조건 등의 용어를 쉽게 설명해 주셨는데 나는 바로 전 학기에 무역학개론을 수강했던 터라, 배웠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할 수 있어서 내용이 반갑기도 했고, 배로 좋았다. 강사님들의 교육에는 본인들이 이우에서 직접 사업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나 인생의 지혜들이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낯선 타지에서 몇 십 년 동안 몸소 겪으며 터득한 지식은 책에서 배우는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셋째날과 넷째날에는 실무교육으로 국제상무성을 직접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두 명 세 명씩 조원과 짝이 되어 악세사리가 밀집돼 있는 1구를 조사 탐방했다. 시장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거대해서, 한인회 사무실에서 1구 악세사리 시장까지 걸어가는 데만 30~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도착 후 멘토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매장에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악세사리를 발견하면 도매가, 납기일, 공장위치, 최소주문량 등을 파악하고, 허락을 받은 후 물건과 수첩에 위의 정보를 기록해 함께 사진으로 남겼다. 6~7가지의 품목의 시장조사를 끝내고 나서, 내가 언제 중국에서 가장 큰 도매시장에서 시장조사를 해보겠나! 하는 생각에 굉장히 벅차고 뿌듯했다. 실제로 내가 한국에 가져다 팔 물건을 찾겠다 라는 생각으로 조사에 임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기 상당히 어려웠다. 예쁘고 세련된 제품을 판매하려면 안목도 길러야함을 절감했다. 그리고 오다가다 이 넓은 시장에서 열심히 각자의 생업을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한 내 모습을 자연스레 반성하게 되었다.

교육 마지막날 수료증을 받기 전 각자의 소감을 나누면서, 함께 온 18명 모두 다 한층 성장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앞으로 무역에 종사하지 않을지라도, 이우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무엇을 하든 매사에 최선을 다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의 자극제가 되었다.

이번 현장체험학습은 이우 국제상무성을 체험하기에는 너무도 짧지만 값진 시간이었다. 본인의 사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쁜 시간 내셔서 교육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한인회 멘토님들의 따뜻한 정에 재차 감사드리고 싶다. 특히 우리 조 구희완 멘토님께서 교육 당일 날 생일을 맞은 나를 위해 케이크를 선물해주시고, 모두 함께 축하해 주셔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 다음 기수가 이우를 방문하더라도, 이번처럼 밝고 따뜻하게 맞아주실 것이 분명하기에, 아직 이우 국제현장학습을 체험하지 않은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사진1- 시장조사를 하는 모습

*사진2- 수료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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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무역현장학습 참가수기(국제통상학전공 4년 손완주)

어렸을 적 중국은 나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역에 꿈을 가지고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영어만 잘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들께서 “내가 여러분 나이로 돌아간다면 중국어를 배웠을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나를 움직였다. 그래서 중문과를 복수전공 하게 되었고 학우들을 따라가기 위해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 정도 괜찮은 실력을 갖췄다고 자만하고 있을 때 이우 무역 현장학습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이 프로그램은 딱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생각하고 신청했다.

 

나는 중국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이우에 가기 전에 중국어 회화, 이우 사투리, 이우시장, 조사하고 싶은 물건 등등 많은 것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시장에서 흥정은커녕 내가 먹고 싶은 음식 하나 주문을 제대로 못하고 쩔쩔맸기 때문이다. 이우는 “닭의 깃털로 황금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었다. 한인회의 멘토님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오셨을지 감이 오질 않았다. 중국에 직접 부딪혀 본적이 없는 나는 중국인에게 말을 걸기도 무서웠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책속에서만 살던 내가 현실 생활로 나오니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자만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사실 나는 무역을 전공하고 중국어를 배워서 한국에서 편하게 회사 다니면서 천천히 배워가다가 퇴직하고 중국관련 내 사업을 해봐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멘토분들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 분들은 이우에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여 많은 것들을 일궈내신 분들이다. 이우에서 직접 흥정을 하고 공장은 어디인지 물류단가는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는지 어떤 아이템을 선정해야 하는지 등등 무역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직접 책임지고 수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무역에 관한 수업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인생에 대한 말씀 하나 하나 모두가 다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특히 최웅기 국장님은 일본에서 공부하시다가 갑작스레 중국으로 오셔서 지금 8년째라고 하셨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데 오셔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셨다고 한다. 이처럼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고 조언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곧 창사에 가서 코트라 인턴생활을 한다고 하니 많이 걱정하시면서 춘절에 놀러오라고 하셨다. 다시 뵙게 되면 생각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다른 학생들에게 이 기회가 다음에도 있다면 꼭 다녀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무역 분야에 관심이 없더라도 일주일만 시간을 내서 한 번 도전해본다면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중문과가 전공이 아니라도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주눅 들지 말고 도전해 보길 바란다. 정말 인생은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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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역 현장학습 후기(중문과 3년 노지현)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절강성 이우시의 온도는 비교적 따뜻했다. 현장학습을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조사해본 이우시의 역사는 대단했다. 인구 68만 명의 작은 도시인 이우는 세계 잡화시장 30%를 차지하는 이우 시장을 만들어냈을 뿐더러 이러한 경쟁력을 불과 25년 만에 만들어냈다. 장사를 잘한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있는 이우였기에 추운 겨울임에도 그 열기가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나는 국제 무역 현장학습이 나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원하였었다. 다행히 며칠 동안의 수업과 현장실습을 통해 전혀 무지했던 무역의 전반적인 이론을 배움과 동시에 중국이라는 나라 안에서는 또 어떤 방법으로 무역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면서 미래에 이런 방향으로도 길을 걷는 나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한가지의 선택권을 더 얻었다.

 

참 좋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중국의 문화나 음식 그리고 중국어를 실전에서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7일 동안의 현장학습을 너무나도 짧게 느끼게 했다. 또한, 꼭 무역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오랫동안 일해오신 분들의 말들을 종합해보면서 IT 쪽과 관련된 가능성도 찾아볼 수 있었고, 중국에서 사업 중이신 학교 선배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중국에서 무엇인가를 해나갈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게 되었었다.

 

현장학습의 내용뿐만 아니라 환경마저도 나를 깊은 감명에 빠지게 했는데 살면서 이렇게 좋은 호텔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묵게 될 줄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으며, 제공해주는 이동수단, 음식 모두가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었었다. 나는 이제 현장학습에서 느꼈던 중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1년 동안 열심히 꿈을 위해 준비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국제 무역 현장학습만큼은 꼭 참여하라고 추천을 넘어 강요하고 싶다. 2018년 아직 1월밖에 안 됐지만 이번 년 최고의 경험이었고,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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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푸톈시장에서의 무역실습(중문과 3년 박건희)

이우시의 푸톈시장은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컸고, 다양한 상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한인상회분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직접 무역실습을 했던 시간은 특히 개인적으로 재밌으면서도 느끼고 배운 점이 많았다. 내가 정말 한국에 소량으로 물품을 가지고 가서 온라인 마켓을 운영한다고 가정을 하고 실습을 해 보았다. 그래서 같이 다녀주신 다른 멘토님께도 여러 부분을 물어보며 실제로 내가 운영을 했을 때 드는 비용들과 현실적인 부분을 따져보기도 하면서 정말 쉽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

 

특히 무역과 관련된 교육시간은 새로운 개념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며, 무역이라는 분야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물류회사를 직접 방문하여 들었던 교육내용과 현장방문을 통한 학습효과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중국으로 파견되어 생활하는 주재원의 실질적인 생활을 알 수 있었고, 주재원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실제 물류회사에서 컨테이너에 실린 물건을 보며 시각적으로 배웠던 모든 장면들이 정말 잊지 못할 순간들로 남을 것 같다.

 

하루하루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 순간 새로웠고, 즐거웠으며, 경이로웠다. 동시에 우리와 동행해주신 한인상회분들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앞으로 내 삶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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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깃털을 황금알로 바꿀 수 있다” 이우에서의 7일(중문1 이다하다)

지난 2018년 1월 3일부터 9일까지 이우시에 다녀왔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우시 무역 현장 학습”에 참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비는 신청서 양식을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계기와 예상 활동계획을 제출해야 했었는데, 무역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무역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검색을 해보고 관련 직업군을 조사를 하고, 면접을 본 뒤 무역 현장 체험 학습에 발탁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이우시의 첫인상은 자그마하고 이제 개발되고 있는 소규모 도시였다. 예상외였다. “이우시에 없는 물건은 이 세상에 없다”라는 말이 나왔듯이 이우시도 상해만큼이나 엄청 발달된 도시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이 판단은 도매시장에 가자마자 금방 오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우시는 말 그대로 상인들을 위한 도시였다. 품목별로 나눠진 섹션 구역들이 있었으며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한 물품시장을 발로 뛰면서 돌기에도 벅찼다. 시장을 돌면서 “닭의 깃털을 황금알로 바꿀 수 있다”라는 이우시의 속담을 들었는데, 과연 평범한 도시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상인들의 도시 이우시니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역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서 몇 가지 악세사리들을 소규모로 판매하기 위해서 직접 구매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마냥 순탄하고 즐겁지만은 않았다. 에누리를 하다가 쫓겨나기도 했으며, 직접 돈을 쓰고 사는 과정이기에 수없이 고민을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과연 이 물건들이 한국에서 팔릴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다 공부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무역이라는 게, 별게 아니구나. 결국엔 다 장사이고,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의 규모가 커지고 나라와 나라를 건너면 그게 무역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 무역현장체험을 신청할 때 무척 난감해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역”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하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 현장실습을 간다는 자체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나니 머리회전이 빨라졌다. 이우시에서의 무역 생활, 무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나아가 나라면 이런 무역 일에서 어떤 분야를 도전할지 여러모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우시에서의 경험은 무역공부 그 이상의 값진 경험이 되었다. 그 7일 동안 가슴이 들끓었다. 아직 무언가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열심히 살아서 내 꿈을 쟁취해야겠다는 투쟁심.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잊어버린 내 꿈이 되살아났다. 멘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늙는 게 두려운 이유는 도전할 나이가 지나가기 때문에 두려운 거예요.”

 

이 한마디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20대를 잘 보내고 있는가?

이우시에서 무역을 배웠다고 무역 일을 하겠다고 확정지은 건 아니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내 미래와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우시. 정말 놀랍고 나에겐 꿈같은 도시였다. 너무 값진 경험과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우시에서 배운 더 넓고 환해진 시야를 가지고 내 진로의 길과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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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에서의 큰 경험(중문과 3년 김은영)

성큼 다가온 2018년 한해의 시작을 이우시 무역 현장학습으로 맞이했다. 평소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우 무역시장에 대해 아주 거대한 시장으로 기술하곤 했다. 수업시간에 접하게 되었던 슈퍼차이나를 통해서도 이우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크기이며 어떤 식으로 무역이 진행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번 이우 무역연수에 참여한 이유에도 또한 내 눈으로 직접 이우시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해보자는 작은 호기심이 있었다.

이우 무역 현장학습은 주로 오전에 한인협회 사장님들의 무역 강의를 듣고 그것을 기본 바탕으로 오후에 직접 무역시장에 투입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며 무역관련 서류를 정리하는 그 전에 있는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했다. 실제로 듣던 대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던 이우시장에서 관심 있는 분야에 직접 시장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면서 어려웠다. 시장조사를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그 뒤 과정만을 중시하면서 공부했던 내가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절대 단순하고 쉽게 해결되는 일들은 없구나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무역이 정말 섬세한 부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조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직접 이우 무역시장에서 시장조사를 하며 여러 나라 외국인들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우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곳인 것을 실감했다.

한인협회 사장님들이 직접 들려주셨던 조언들도 너무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 가장 가슴을 울렸던 것은 이우시장에서 살아온 이야기였다. 이우가 아무리 성공 가능성이 무한한 보물섬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누가 자신의 아이디어만을 믿고 뛰어 들어갈 수 있을까? 사장님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보물섬에 뛰어들어 10년 이상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셨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다른 사람들이 파놓은 우물에 들어가고자 발버둥 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공무원, 평범한 회사원을 추구했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사장님들의 조언을 따라 내 우물을 파려고 노력하고 싶다.

* 사진1: 팀 대표로 발표하는 모습

  사진2: 시장조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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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역 현장체험 참여 수기(중문과 1년 김자운)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에서 남쪽으로 10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우, 이곳은 경공업제품 생산 및 유통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로 중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소매상들이 몰려드는 장소입니다. 저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 무역에 대한 조금의 배경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무역현장을 체험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국제 무역 현장체험을 통해 이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무역의 실무적인 내용과 중국소상품의 중심이라는 위상을 가진 이우를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이우시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다양하고 수많은 물건들이 위치한 푸텐시장을 비롯해 이우한인회와 이우한인협동조합을 방문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루 동안 쉬지 않고 돌아도 끝나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시장, 또 그곳에서 서로 힘을 모아 입지를 키워가고 계시는 이우한인회분들과 협동조합 분들의 모습을 보니 존경의 감정과 동시에 익숙한 곳에서조차 뚜렷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저의 모습들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우 속 많은 한인 멘토님들을 통해 앞으로의 구체적인 목표와 막연한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던 1조의 멘토님이 강조하신 인생계획표를 통해 근시적인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 설계해 나가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또한 배울 수 있었습니다. 5일간의 프로그램이 너무 빨리 종료된 거 같아 아쉽기도 했지만 이우에서 얻은 지식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전남대학교 코어산업단과 이우한인회분들, 교수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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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현장학습 참여수기(중문과 1년 김지민)

학교에서 가는 무역현장실습이 쉬운 줄로만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에 갔습니다. 하지만 현장 실습 과정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고 정말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무역현장실습은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현장에 직접 가서 경험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러 수업 중에서 아이템 개발 및 제작 관련 교육을 해주신 심성운 님의 강의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 가지를 보고 여러 가지 시각(눈)을 가져라’ ‘부딪혀 보고 두려워하지 마라(망설이지 마라)’ ‘처음에 완벽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등 강의를 들으면서 나태했던 저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도하지 않은 채 마냥 시간만 보내왔던 점, 나의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라고만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직은 부딪혀보고 무엇인가 도전해야 시기라는 점임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직접 시장에서 체험해본 실습은 매우 낯설고 두려웠었습니다. 중국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상태와 많은 물건에서 어떤 것을 조사할지도 매우 막막했었습니다. 하지만 수행해야 할 과제도 있고 여기에 와서 직접 못한다면 후회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고 굉장히 떨렸지만, 천천히 질문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떨린 마음이 풀려 이후에는 자신 있게 조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중국어 실력을 느끼고 정말 어학 공부를 능숙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게 되었습니다.

무역현장실습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 정말 감사한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속한 1조를 담당해주신 황석구 멘토님의 마지막으로 1조에게 해주신 말씀이 중국에 다녀와서도 가장 생각이 납니다. ‘자기만의 삶의 시간표(목표)’에 대해 강조를 하셨는데 멘토님의 인생 경험과 함께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경제적인 부는 물론 개인적인 성취감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멘토님의 말씀은 프로그램을 마치고 중국을 떠나 한국을 가기 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을 해주시게끔 해주셨습니다.

무역현장실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면서 어려움도 느끼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기회가 있다면 중문과 친구들에게 꼭 추천할 것입니다. 제가 느꼈던 값진 경험을 다른 중문과 학생도 경험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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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시 현장체험학습 활동 수기(중문과 1년 김단비)

2018년을 시작함과 동시에 부푼 기대를 안고 이우시 현장학습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우시 현장학습을 기점으로 정말 많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인협회 멘토 선생님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나에게 정말 많은 용기가 되었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항상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들의 삶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줬다.

한국에서 이우 시장에 대해 조사할 때는 세계 최대 무역시장이라는 곳의 규모가 가늠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우시가 어떻게 최대 무역시장으로 성장한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만을 가지고 이우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보고 느낀 이우 시장은 어떻게 20년 만에 이우시가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해줬다.

여러 강의를 들었고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역시 멘토 선생님들이 들려주신 경험담이었다.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이우시에 자리를 잡고 사업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의 조언은 미래 설계의 시작 단계에 서있는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세상이 대기업 회사원, 공무원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경쟁이 심하지만 이우시에는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직종은 많고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많았다. 편협한 사고를 하고 살았다는 것에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오갔다. 모든 선생님들은 쉽게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많은 실패를 거쳤고 그 곤경을 이겨냈기에 현재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하고 또 당장 주어진 활동을 하면서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단기적인 일에 집중해서 살아왔다. 그 기간 동안 반성보다는 이 문제를 어서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강했다. 그랬기에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또 그 그것을 이뤄나가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은 많이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우시에서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는 동안만큼은 반성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특히 현지인과 소통하면서 느낀 부족한 중국어 실력에 스스로가 많이 위축됐었다. 너무 안일하게 공부했다는 생각을 현장학습 기간 내내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수준을 알고 앞으로의 공부를 하는데 있어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하다.

다만 나는 무역 관련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기본 지식이 없었던 터라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생기게 된다면 강의 주제에 대한 공부를 더 꼼꼼히 해가서 강의의 활용도를 높여야겠다.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일주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나는 정말 큰 자극제 한 방을 맞은듯한 느낌이다. 온전히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무엇보다 특별한 시간이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 현장체험학습을 하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과 생각 그리고 멘토 선생님의 조언은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있어 큰 용기를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내가 받은 정말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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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 소감문(중문과 1년 최민지)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이우시와 푸텐시장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푸텐시장은 중국 내 소상품 거래의 70% 이상이 이루어지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적합한 곳이었다. 매일 치열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생동감 있는 이우시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 또한 그 치열한 거래의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중국으로의 체험학습을 떠나게 되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교수님께서 각자의 관심 상품에 대한 오프라인 및 온라인 시장 조사를 과제로 내주셨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해 조사하면 푸텐시장에서 그 상품을 찾기 쉽고 단가 또한 비교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형’과 ‘완구’를 관심 상품으로 정하고 10가지 상품(물총, 인형, 스피닝토이 등)을 선정하여 조사했다.

그러나 인지도 있는 상품(브랜드가 있는 상품)을 선정한 것은 독이 되었다. 브랜드가 있는 상품은 수출 과정에서 판권에 대한 일정한 대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마진(순수익)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무역 과정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얼마나 시장 거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멘토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거래’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상품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시장 조사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직접 시장에서 상품조사를 해보았다.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는 생활 회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상인회 분들께서 제공해 주신 자료를 활용하여 ‘단가는 얼마인지’, ‘최소주문량은 얼마인지’, ‘CBM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 상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중국어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러나 멘토 선생님과 선배의 시범을 보고 차근히 시도해 볼 수 있었고, 차츰 중국어로 상품조사를 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이렇듯 지난 4박 5일간의 프로그램을 통해 오전에는 ‘무역’에 대해 멘토 선생님들의 경험을 예시로 이론적인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이론 수업을 기반으로 한 상품조사를 했다. 체계적인 상인회 분들의 도움으로 프로그램의 이름에 충실한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을 알차게 경험했다. 이 프로그램을 접하기 전에 나는 ‘무역’이 종합예술과 같아서 진입 장벽이 높은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종합예술과 같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학문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 조의 멘토 선생님은 황석구 사장님 이셨다. 황석구 사장님께서는 프로그램 동안 시장조사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부터 차근히 설명해 주셨지만, 무엇보다 ‘삶의 시간표’에 대해 굉장히 강조하셨다. 지금까지 본인의 경험을 예시로 들면서 결국 삶의 시간표(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개인의 성공, 가정의 행복 더불어 경제적인 성공까지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무역과 더불어 삶에 있어서도 말 그대로 ‘멘토’의 역할을 해주신 황석구 사장님을 비롯한 모든 이우 상인회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무역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신청했던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을 통해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무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시장조사 방법, 생활 및 무역 회화 그리고 삶에 대한 자세까지. 내년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다방면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을 강력히 추천할 것이다. 기회의 땅 중국과 실용적 학문 무역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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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국제무역현장학습(중문과 1년 임다희)

여기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비단 무역뿐만 아니라 모든 시각, 관점, 심지어는 인생까지도 말이다. 무역은 내가 단 한 번도 겪어보거나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서의 학습은 안내판 같은 것이었다. 여기는 이런 길인데 와볼래?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이우한인회 멘토님들은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남들이 없는 물건, 남들이 안하는 틈새시장을 파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맥락과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라는 것이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발품을 팔아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까지 해주셨다. 이 말씀들은 좋은 무역의 가르침이 되겠지만 또한 좋은 인생조언 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더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결국 자신이 하던 대로만 하게 되어 변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씀처럼, 진정 내가 열정이 있다면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많이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갈 길의 계획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내 갈 길을 가다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다른 길을 가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경험해보고, 시도해보는 것이 지금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무역 현장 실습을 통해 나는 도매로 물건을 주문하는 방법을 배웠고 무역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체계를 잡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다. 나는 배웠다는 것만으로 나중에 나아갈 방향에 도움이 많이 될 거라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먹고,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에 많은 감사를 느낀다. 멘토님들을 보고 나중에 커서도 무언가를 말해주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우의 시장은 너무나도 컸다. 세상은 이보다도 크다.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며 도전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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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국제무역현장학습 참가수기(중문과 1년 김은민)

세계적 무역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이우(义乌)시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국제상무성에서, 세계 물류의 흐름을 보았다. 각 칸마다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이우에 없으면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평소 문구점,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이 그곳에 있었다.

한인회에서 만난 멘토님을 통해 수많은 조언을 얻었다. 무역이나 장사에 대한 Tip과, 인생에 있어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정말 유익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분처럼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인회에 모여 무역실습에 대한 공부를 했다. 起订量과 같은 무역 용어와, 어떻게 무역이 이루어지는지 등을 배웠다. 과연 내가 이 무역현장실습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이 정보들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꼈다. 스물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중요한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임이 떠올라 행복했다.

무역 실습은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현장학습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를 시도해 볼 일이 있었을까? 원숭이 인형으로 상품조사를 시작해서, LED풍선, 젠가 등 다양한 상품을 조사해 보았다. 단가와 CBM 등을 물으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붙었다. 중국어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고취할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할지 말지를 고민 중 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당장 신청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만큼 나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내 가치관을 재정립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얻은 가르침대로, 항상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되새겼다. 좋은 교수님들과 이런 프로그램에 함께해 영광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반드시 참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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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영화사 그리고 여름 밤의 영화제(불문과 안진)

저는 인문대학 코어산업단의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통하여 프랑스어를 상용어로 쓰는 캐나다 퀘벡 주에 위치한 몬트리올에서 이번 여름방학(7,8월)을 보내고 왔습니다.

제가 근무한 회사는 시네 타피 루즈(Ciné tapis rouge)라는 영화회사로서, 주로 퀘벡영화(퀘벡 감독이 제작한 영화, 퀘벡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등)를 지원하고 홍보하는 일을 합니다. 회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회사였으며, 회사 직원들 모두 몬트리올 또는 프랑스 사람으로서 영화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를 배우는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제가 인턴기간 동안 주로 수행한 업무는 Ciné tapis rouge에서 주관하는 ‘시네 뷰’(Ciné Vue)라는 영화제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제는 몬트리올 근교의 작은 휴양지 마곡(Magog)에서 열렸으며, 퀘벡의 영화를 상영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약 일주일동안 열린 영화제입니다. 이 영화제가 열린 기간 동안 저는 회사 사람들과 Magog에서 합숙생활을 하며, 매일 밤 다양한 영화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7번의 밤 동안 매일 다른 장소, 다른 영화, 다른 테마로(Ciné pointe merry, Ciné playa, Ciné camping, Ciné spa, Ciné suisse, Ciné croissant, Ciné musique, Ciné personnalité, Ciné vino) 영화를 상영하였고,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제가 열리기 전에는 영화제를 홍보하기 위해 영화제가 열리는 Magog 근처의 식당, 호텔, 병원 등 편의시설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업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동안은 영화제의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리정돈, 질서유지 등 현장에서 직접 일하였습니다. 특히 매일 밤 열리는 영화제를 홍보하기 위해 회사 사람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영화제 팜플렛을 나눠주었는데 이 활동을 통해 프랑스어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며 영화제를 홍보하고 설명하는 것이 낯설고 망설여져 힘들었지만, 여러번 용기를 내어 시도하니 점차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었으며 언어에 대한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신청할 때는 마냥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동안 낯선 외국에서, 게다가 여행이나 어학연수가 아닌 인턴 활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이었습니다. 대학생 3년 동안 프랑스어를 꾸준히 공부하였고, 작년 한 학기동안은 프랑스로 어학연수 또한 다녀 왔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을 하려니 여전히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절한 회사사람들과 홈스테이 가족들 그리고 몬트리올 사람들 덕분에 주눅들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프랑스어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므로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초반보다 확실히 향상된 언어 실력과 언어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몬트리올에서 지내면서 한국과는 다른 몬트리올의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특히, 한국과는 많이 다른 식문화가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몬트리올의 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두 달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친밀해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홈스테이 식구들을 위한 한식요리를 했는데, 이 경험을 통해 몬트리올 사람들의 한식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으며 서로 다른 식생활 문화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해외인턴이라는 흔치않고 쉽지않은 경험을 마치고 나니 앞으로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두 달이지만, 이 두 달은 저의 대학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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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메모리, 파리 (불문과 고은송)

파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온지 어느 덧 한 달이 되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에 가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해외는 언니와 함께 일본에 다녀온 게 전부인 나였기에 혼자 비행기를 12시간 타고 파리에 잘 도착할 수 있을지 부터가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출발 전 인터넷으로 정보를 잘 알아본 덕분에 아무 일 없이 파리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첫 날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했기 때문에 바로 잠들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을 보러 갔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에펠탑은 기대에 못 미쳤다. 날씨도 흐리고 녹슨 에펠탑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보고 나서 인턴으로 일할 곳인 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로 갔다. 문을 열어주시던 관장님의 인상이 푸근하고 좋아 낯선 곳에서 느낀 긴장감이 조금 사그라졌다. 인턴 첫 날은 하는 일(조형 예술 작품 전시를 주로 기획하며 콘서트, 영화 상영, 문학 낭독 및 토론 등 문화적 성격의 행사를 주관), 근무 시간(주 5일, 1일 7시간) 등을 이야기하며 그 곳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일할 곳은 비교적 깔끔했지만 거기서 키우는 고양이가 사람을 좋아해 내게 자주 다가왔고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처음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이자 인턴 생활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활동은 탱고 축제이다. 탱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탱고 축제를 준비하느라 피곤해있던 내게 어떤 한 분이 같이 춤을 출 수 있냐고 물었다. 탱고를 출 줄 모르는지라 거절을 했다. 미리 탱고를 배워놓지 않았던 게 아쉬웠다. 춤을 추진 못했지만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분위기가 낭만적이어서 가만히 보고 있는 걸로도 행복했다.

일하러 가는 날이 아닐 때는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 유명한 곳을 갔을 때는 관광객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여유로운 파리 특유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걸 느끼기 위해 내가 찾아간 곳은 방브 벼룩시작이었다. 자신이 쓰던 물건을 팔려고 나온 사람들이 길가에 길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된 책, 주방용품, 악세사리, 옷 등이 있었고 물건을 파시는 분, 사러 오시는 분들 또한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셨다. 오래 된 물건을 더 값진 것으로 여기며 보물찾기 하듯 구경하는 파리 사람들의 모습, 맑은 하늘 아래 호객행위 대신 느긋하게 책을 읽으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내가 파리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파리 생활을 하면서 마냥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공항 가는 길에 눈뜨고 소매치기를 당할 뻔 했다. 29인치 큰 캐리어를 끌고 등 뒤에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메트로 역 안에서 카드를 찾고 있는 중에 어떤 건장한 남자가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뺏으려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느라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여서 뺏기지는 않았지만 눈이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는 그 남자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내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핸드폰을 뺏기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고 마지막까지 항상 주의하라는 내게 주는 교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파리 생활은 나에게 행복을 주는 메모리로 남아있다. 바쁜 일상에 지칠 때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행복했던 그 때가 생각나 기분이 좋아진다. 붉게 물든 센 강 옆을 거닐던 그 때, 햇볕이 반사되어 금빛으로 보이던 에펠탑, 눈 마주치면 미소를 짓던 친절한 프랑스인들이 그리워진다. 파리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갈 동안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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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그리고 마곡(Magog) (불문과 임수...

저는 운 좋게 코어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몬트리올(Montreal)이라는 도시의  영화단체에서 인턴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 단체는 몬트리올에서 시작하여 세계 여러 도시들과 캐나다 여러 도시들에서 자체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하여 퀘벡 영화와 영화인들을 알리고, 이를 통해 퀘벡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세계 여러 도시들과의 영화 공유를 통해 문화까지 공유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제가 바라던 일을 하는 단체에서 근무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짧지만 유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몬트리올 도착 후, 숙소로 영화사 책임자이신 Vanessa가 직접 방문해주셨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Ciné Tapis Rouge에 대해 설명 해 주셨고, 앞으로 개최할 영화제 소개와 더불어 제가 하게 될 일들에 대해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일주일에 2-3번씩 팀원들 모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는 프랑스어로 진행되고, 전문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어 처음에는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팀원들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어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홍보팀의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지역의 주변 업체나 단체들의 연락처를 알아보고 메일이나 전화번호를 알아보고 엑셀 파일로 정리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리스트를 정리한 후, 리스트를 기반으로 업체들과 연락하여 영화제를 홍보하고 홍보 프로그램지를 배부하는 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영화제는 몬트리올 근처의 휴양도시인 마곡(Magog)이라는 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제는 Magog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장소와 환경에 어울리는 퀘벡 영화들을 상영해주었습니다. 공원, 호수, 스파, 캠핑장, 대학교 캠퍼스 등 여러 장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제 일정 동안 모든 팀원들이 Magog의 한 숙소에서 다 같이 지내면서 함께 일했습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영화제 기간 동안 팀원들과 많은 정이 들었습니다. 영화제 당일에는 시내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티켓을 팔거나 영화 상영 준비를 하였으며, 영화가 끝난 후에는 영화감독들과 관객들과의 짧은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이 끝나고 나면 영화감독, 관계자들, 팀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영화나 여러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캠핑장에서 진행되었던 영화제가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Magog에 위치한 국립공원 안의 캠핑장에서 진행되었는데, 호수 바로 앞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별도 많이 뜨고, 모닥불도 피었습니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프랑스어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영화계, 문화계 전반의 사람들을 만나 같은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서 유익하고 새로웠던 경험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홈 쉐어를 하면서 일상 속에서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프랑스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숙소를 2번 옮겼는데, 마지막 숙소였던 곳은 몬트리올의 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집에서 홈 쉐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그 분과 매일 저녁, 주말 몬트리올 곳곳을 다니고, 여러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한국 영화와 퀘벡 영화, 한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문화적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코어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파견 학생 당시와는 다르게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며, 좀 더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제가 좋아하는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를 공유하고 일 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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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다국적 벤처기업에서의 2017년의 여름 (불문과 임수연)

 

 안녕하세요. 저는 해외인턴프로그램에 지원하여 프랑스로 인턴십을 마치고 온 불어불문학과 임수연이라고 합니다. 해외 인턴십이라고 하면,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직무를 보는 만큼 많은 학생들이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선뜻 지원하기에 망설이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처음 지원할 때 그런 부분들이 조금은 걱정이었는데요. 그런 학생들을 위해 저의 인턴십 경험을 나누어보고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남대학교 코어사업단에서 운영하는 2017 하계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인턴십을 다녀왔습니다. 위의 프로그램은 인문대 학생들에게 해외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영어권·불어권 등 총 5개 언어권에 대한 인턴십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프랑스 내 인턴십을 할 기업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프랑스 내의 한인 사이트들을 주로 방문하여 인턴십 할 기업을 찾았습니다. 여러 기업이 있었지만, 조건에 부합하는 기업을 찾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조건과 부합하였고 그곳에 연락을 넣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메일로 보내드리고 화상채팅 통해 간단한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은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진행이 되었으며, 간단한 자기소개와 언어능력, 원하는 분야와 임하는 각오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인턴십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 소개를 해드리자면, Help My Candidature라는 벤처기업으로 학생들의 성공적인 프랑스 유학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입학서류 및 자기소개서 CV 등의 서류 번역 및 교정, 행정 처리 동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와 아시아(한국, 중국 등) 기업들 사이에서 협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6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총 8주에 걸친 인턴십을 하고 왔습니다. 회사는 프랑스 10대학(Universite de Nanterre) 내 coworking center에 위치해 있었으며, 다른 벤처기업 사람들과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회사 특성상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어 회사 측과 상의 하에 주 5일 중 2일을 사무실로 출근하고, 3일을 자택근무를 하였습니다. 근무시간은 주 35시간으로 9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하였고, 초과 근무 없이 5시 정시가 되면 퇴근하였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한국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주된 업무는 프랑스 교육이나 생활, 행사 등을 주제로 매일 한 개의 글을 작성하여 회사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습니다. 매일 주제를 정하는 것이 힘들긴 하였지만, 포스팅 글 작성을 하면서 저 역시 몰랐던 정보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포스팅 한 글은 Wordpress, SEO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회사 홈페이지에 다시 기재하고 구글 검색엔진을 만드는 일을 하였는데, 처음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었지만 회사 동료들이 자세히 알려주었고 계속 사용하다 보니 곧바로 손에 익어져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프랑스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회사에 연락해왔는데, 성공적인 미팅을 위해 한국 트렌드 분석 및 관련 시장조사를 하고 PPT나 엑셀, 차트 등으로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회사 규정 및 서비스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홈페이지에 기재, 프랑스 전 대사관과의 인터뷰 참여 진행, 홈페이지 및 SNS 관리, 제휴업체 교섭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였고, 인턴십 종료 직전에는 프랑스 대학 커리큘럼을 정리하여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카탈로그 작업을 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인턴십이 종료되었는데, 맡은 업무를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이번 인턴십은 저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떤 부족한 점이 있는지 알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턴십 초반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회사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주어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턴십을 지원하기 전에는 먼 타지에서의 인턴십에 대해 걱정과 부담감이 있었지만, 실제 기업에 들어가 다양한 업무를 보면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중요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책임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해외 인턴십 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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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해외인턴 간단한 팁 소개(중문과 문정훈)

중국의 경우 핀테크가 굉장히 발전되어 현금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스마트폰 하나로 밥 주문, 공용자전거 이용, 기차표 예약 등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중국에 도착한다면 바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공상은행이나 건설은행 등 중국계좌를 개설해 휴대폰과 연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계좌 계설 시 여권을 꼭 챙겨 가야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는 웨이신페이, 알리페이를 이용할 수 있고 Ofo, mobike 등 공용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공용자전거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 보증금을 제외한 이용요금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두 달 간 mobike를 이용하며 보증금을 제외하고 2위안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美团, 饿了么 등 어플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데 굉장히 편리하고 저렴합니다.

해외 인턴이라는 경험이 흔하지 않은 만큼 여러 경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회사 일 뿐만 아니라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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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 음악을 전하다-상하이 MG Playing에서의 인턴(중문과 ...

안녕하세요. 저는 중어중문학과 14학번 정다솜입니다. 저는 여름방학 기간 중 상해의 MG Playing이라는 배경음악회사에서 단기 인턴 생활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처음에 회사이름을 들었을 때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고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출발 직전까지도 배경음악회사라는 것만 알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회사는 상해의 한인타운인 홍첸루에 위치해 있었고 저는 ‘상해두레마을’이라는 카페에서 집을 구해 떠났습니다.

도착 후 바로 다음 날 첫 출근을 시작했는데 저를 포함한 세명이 일하는 작은 소기업이었고 저는 음악 선곡이라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처음엔 음악만 선곡하는 줄 알았으나 부담이 되었던 이유는 제가 선곡한 음악이 중국에 진출한 티니위니, 스파오와 같은 이랜드 패션 자회사들의 중국대륙 전 지역에 위치한 수많은 매장에서 흘러 나오고, 파리바게트와 올리브영과 같은 중국으로 진출한 많은 한국기업들의 매장에서 역시 제가 선곡한 음악들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회사가 중국에 진출했을 때 중국 정서에 맞는 그리고 한류의 흐름에 맞는 적절한 음악을 선택하고 재생하는 것이 매장 매출과 분위기에 중요한 마케팅의 수단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음악에 대한 피드백이나 기술적 결함이 생겼을 때 보통 전화가 오는데 그 전화를 받으며 그 피드백을 해결하는 역할 역시 주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스파오 매장은 신나는 K-POP을 선호하는데 너무 잔잔하거나 혹은 팝송이 들어갈 경우 그 즉시 다시 선곡해 보내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화장품 매장이나 의류 매장에 들어가면 그 매장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노래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더 즐겁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쇼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고 마케팅이라는 부분이 얼만큼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하다면 간단하지만 그 무게 만큼은 절대 가볍지 않은 업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업무는 책임감 있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업무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사장님과 같이 일하는 팀장님 역시 정말 친절하시고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하셨기 때문에 현실의 회사생활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상해를 관광지를 돌아보며 잊지못할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은 고민하고 있는 학우가 있다면 저는 꼭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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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갤러리 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 ...

 지난 여름방학(2017년 7월~8월)동안 프랑스 파리에서의 인턴 생활은 전시, 기획을 꿈꾸는 저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랑스어가 주 전공인 저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한 프랑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이후 프랑스에서의 교환학생 기간 그리고 유럽 배낭여행 동안 저에게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접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지식과 깊은 공부 없이 작품만을 감상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낀 후에는 제2전공으로 미술대학의 이론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프랑스 미술은 물론 현대 미술의 메카인 런던으로 대표되는 영국 미술과 미국 미술과 같은 다양한 지역의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전통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공부를 하였습니다.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진로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데, 제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미술 전시 기획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이론적 부분과 함께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도중 학교 선배로부터 방학 기간 동안 해외에서 인턴쉽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인문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에서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부터 저는 주 전공인 프랑스어와 함께 미술 이론 공부를 접목시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은 바라던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맞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인턴을 한 곳은 파리 19구에 위치한 에스파스 데 자흐 상 프롱티에흐(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라는 이영순 관장님이 설립한 사설 갤러리입니다. 갤러리은 단순한 회화 전시를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선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갤러리 운영을 위한 단순한 일에서부터 다음 전시를 기획하는 것까지 관장님께서는 미술 이론을 전공하는 저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많은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근무 시간 이외에는 예술 구역인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다양한 갤러리들을 소개해주시며 방문도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번 인턴 과정을 통해 그동안 이론으로만 배웠던 전시 기획의 구체적 부분들의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작가와 갤러리가 처음 컨택하고 계약하는 과정은 물론 재정적인 부분까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번 인턴 기간 동안 경험한 일들은 향후 제가 꿈꾸는 일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8주 기간 동안의 인턴쉽 과정을 마치고 남은 방학 기간 동안에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패기 구겐하임의 컬렉션,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까지 현대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여행까지 할 수 있어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인턴 과정을 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저에게 이번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의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은 정말 큰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짧은 기간 동안 이지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불안하였던 미래에 조금 더 선명한 길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꿈꾸고 있던 일을 하는 경험이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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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NGO단체에서의 인턴(불문과 황혁)

제가 인턴으로 일한 곳은 예스 아카데미아(YES ACADEMIA)라는 프랑스 NGO단체입니다. 단체는 제3세계 국가에 프랑스 청년들을 파견하여 낯선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청년들이 국제시민의 일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입니다. 작년까지는 글로벌 포텐셜(Global Potential)이라는 미국 NGO와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정하고 공동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현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프랑스 본부를 포함 세네갈, 인도, 니카라과, 아이티까지 총 다섯 곳의 지부가 있습니다.

저는 인도 지부와 관련된 부서에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주로 프랑스 현지에서 인도 참가자들과 프랑스 참가자들을 관리했습니다. 또한 인도와 프랑스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 관련 정보가 잘 통하지 않는 오지에 있는 참가자들에게 보냄으로써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의약품 관련 업무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인도에서 부족한 의료물품을 프랑스에서 파악하여 보내는 일이였습니다. 인도 현지의 기후변화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맞서 대처하기 위한 정보수집의 업무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이 인턴의 대부분을 차지함에 따라 주요 업무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유럽의 여러 국가 특히 영국에서 온 인턴 학생들이 있는 관계로 영어도 사용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의 특성으로 인해 참가자들과의 대화 및 메일을 통한 연락은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메일을 작성할 때나 공적인 자리에서 영어를 말하기 전에는 영어권 국가 인턴들의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으며, 자유로운 사무실 분위기 덕분에 인턴 기간 동안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전체적으로 사무실 분위기는 구성원들이 서로 도와주는 것이 일상적이며, 국적에 관계없이 화목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식사나 다과를 같이 하면서 동료들과 정도 많이 쌓였습니다. 사실 이번 인턴의 성과 중 가장 큰 것이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사귄 일입니다. 이전에 제가 경험했던 현지 언어연수 당시에는 매일 프랑스어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프랑스 친구는 사귈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인턴 기간 가장 만족스러운 지점이 바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인턴을 함께 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도전적이며 진취적이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유로운 사무실 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상급자인 사라씨는 인턴 기간 중 수시로 제 생활과 애로 사항을 확인했으며 그녀를 비롯하여 동료들과의 식사 등 잦은 만남을 위해 프랑스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턴 기간이 끝났을 때 동료들이 환송회를 열어준 것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환송회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과자, 과일, 음료들을 준비해서 감동은 배가 되었고 동료들이 전해준 롤링페이퍼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프랑스는 물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코포니(프랑스언어권) 지역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국제 개발이나 다른 이들에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위해 먼저 프랑스어를 깊이 있게 공부하여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합니다. 관련해서 현재 프랑스어학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물론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을 계획 중입니다. 저는 현재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상태입니다. 이번 학기에서 제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좀 더 나은 방향과 진로는 어떤 것인지 심사숙고하여 사회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걸음을 하려고 합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정보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야 하는 프로그램이며 마치 아직 발굴되지 않는 부분을 개척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부족한 언어 실력과 현지에 대한 작은 지식만으로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도전입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성장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깊은 고민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아직 경험이 없는 저와 같은 학생들로서는 많이 힘들 수 있지만 제대로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면 크게 발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체적으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 숙소 찾기 등 그리고 동료들과의 인간관계 구축의 과정 모두가 도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학과 수업에서 먼저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이 최선을 다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해외인턴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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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MICE에서의 인턴생활(행정학과 배신선)

안녕하세요, 행정학과 배신선입니다.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중에 코어사업단 프로그램을 통해 평소에 관심 있었던 MICE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원처럼 많은 책임을 맡아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한국에서 인턴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단순 업무가 아니라 직접 기획도 하고 미팅도 진행하는 등 더 자율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이 많이 없어서 상해한국상회 인턴 생활을 포함하여 약 8개월간의 상해 생활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진1>과 <사진2>는 저희 사무실 사진입니다. 회사가 설립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세련된 건물에 깔끔해요! 물론 자리는 깔끔하지 않긴 하지만 :)

2개월 동안 홍보 책자 제작하느라 꽤 힘들었지만, 마무리 짓고 오게 되어 기뻤어요.

<사진3>은 상해에 혼자 있으면서 미래에셋 경제교실에서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진행했던 사진이에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같이 진행했던 보조교사들도 재미있게 경제 관련 게임을 했었어요.

그리고 상해 패션 위크 때 동물 탈을 쓰고 퍼포먼스도 했습니다. 패션 관련 직장인들이 만든 스터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굉장히 열정 있으신 분들이라 즐거웠고, 상해에서 직장 생활에 대한 조언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사진을 찍었습니다. 동물 탈을 쓰고 있어서 자신감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사진4>와 <사진5>

마지막으로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 사진 보여드립니다. 24대 회장 선거 이후에 받았던 꽃들을 페트병에 꽂아놨던 사진이에요. 상해로 해외 인턴을 오셨을 때 문제가 생기면 상회로 연락해보시면 괜찮을 거예요.<사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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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it’s skin에서의 인턴생활(중문과 전하형)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15학번 전하형입니다.

저는 이번 여름 코어사업단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통하여 상해에서 7월 3일부터 8월 25일까지 인턴을 하였습니다. 제가 일했던 회사는 한국 화장품 회사인 it’s skin입니다. it‘s skin은 올해 3월에 중국 상해에 진출하여 항저우에 지사를 두었으며, 9월 중국의 홈쇼핑을 통하여 정식출범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초기 세럼 작업을 하는 과정이어서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업부, 기획부, 제정부 등 다양한 부서의 일을 배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부서의 일을 처리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에 대하여 방향성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익히고, 적응해가며 다양한 부서의 경험은 앞으로 있을 취업에 대해 어떠한 분야로 일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턴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많은 일을 처리했지만, 제가 진행했던 일 중 크게 세 가지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중국의 판매 사이트인 쥐메이, 타오바오, 티몰과 같은 해외직구 사이트에서 채널별로 it’s skin 상품이 얼마의 가격에 팔리는지 가격 비딩을 진행하였습니다. 원가와 비교하여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PPT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든 PPT는 한국 본사의 미팅에서 발표 자료에 사용되었으며 앞으로 있을 T-mall과의 수권에 관련한 미팅에서도 사용되어 질것이라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단상자, 용기 문안 정리를 하였습니다. 중국에서 파는 한국제품의 화장품들은 단상자나 용기에 중국어로 화장품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과정에서 오류를 확인하고, 통일되지 않는 문구를 찾아 통일성을 가질 수 있도록 오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단상자와 용기 문안에 통일성을 갖도록 하는 이유는 각 제품마다 똑같은 문장을 제품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정확성과 중국어능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꼼꼼하게 진행하였던 일이였습니다.

세 번째로는 월별프로모션 진행이었습니다. 인턴이 끝나갈 때쯤에 맞게 된 일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제가 프로모션을 계획하지는 못하였습니다. 9월 중국의 홈쇼핑을 통해 중국에 정식출범을 할 예정이었고, 2018년 1월 중국에서 매장 첫 오픈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정식출범에서 중국인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을 하여야 했습니다. 곧 인턴생활이 끝나고 귀국을 해야 했기 때문에, it’s skin 경쟁사인 에뛰드, 중국에서 이미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니스프리의 중국에서 최근 5년 동안 진행한 프로모션들을 정리하여 참고자료로 보내드렸습니다. 저의 생각과 앞으로 진행했으면 하는 프로모션들도 간단하게 작성하여 보내드렸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제가 계획한 프로모션으로 중국에서 제품들이 판매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필요한 자료와 몇 가지 프로모션을 제안하는 정도로만 진행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창고정리, 명함정리, 중국 내 선호 화장품 자료수집, 마케팅 자료 수집 등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회사의 분위기와 내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사는 모회사인 한불화장품과 자회사인 네오팜, 잇츠스킨이 사무실은 다르지만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월요일마다 세 회사가 다 같이 회의를 하고, 같이 회식을 하며 같은 회사처럼 생활하였습니다. 회사의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회사분들 모두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보이는 열정적인 회사였습니다. 월요일마다 늘 회사분들과 다 같이 밥 먹는 날이어서 항상 이사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회사분들도 너무 친절하시고 상냥하셔서 인턴인 저도 항상 막둥이라 부르시며 잘 챙겨주셔서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고, 업무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it’s skin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이사님과 차장님 대리님께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그 때 이사님께서 인턴이라고 허드렛일 시키지 않는다고,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온 만큼 직원이라 생각하고 똑같이 일 배정해 주겠다고 하셨고, 저에게 본사 PPT 발표자료, 가격비딩, 월별 프로모션, 베이안작성 등 직원분들이 하시는 일을 똑같이 맡겨 주셨습니다. 직원분들과 똑같이 대해 주셨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었고, 일을 하면서 회사가 어떻게 경영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내려고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이 보고, 경험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며 네오팜 이사님과 함께 백화박람회, 티몰 친목세미나, 알리바바 본사 미팅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좁았던 저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으며, 다양한 업계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가치관과 생각도 많이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기업 취업에 관심이 있었기에 티몰과 알리바바 미팅 참석은 저에게 너무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외인턴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上海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상해에서 생활은 어학연수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외국에서 혼자서 해결해야 될 문제(보증금, 주숙 등기, 전기세 등)도 많았고,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과 처음 경험해보는 회사라는 문화에 적응하는데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상해라는 낯선 도시를 주말이나마 즐길 수 있었고, 회사라는 처음 경험해보는 기업문화는 어색하지만 설렜고,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에는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기 아쉬웠습니다. 그만큼 저한테는 재밌고, 설렜던 경험이었습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고민 중인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던 직접 부딪히며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본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이면 있을 취업에서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 정확한 방향을 가질 수 있었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스스로 회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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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서의 인턴십(중문과-조채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상하이에서 인턴생활을 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중어중문학과 조채은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시작되었던 저의 인턴생활이 어느덧 8주라는 시간이 흘러, 벌써 1/2을 채웠고, 상하이에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인턴실습을 하고 있는 곳은 상해 글로리제이 투자 유한회사 (上海GloryJ投资有限公司)의 경영지원부서입니다.

회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 규범화된 세무회계 서비스 제공을 바탕으로 우수 기업에 대하여서는 상하이 장외주식 상장을 진행시키고 유력 투자기관을 연결해주는 일을 합니다.

크게 장외상장과 회계세무컨설팅, 기업개편의 업무 세 가지를 중점으로 업무가 진행됩니다. 이에 따라서 세무회계팀, 법인 설립팀, 장외주식상장&융자팀, 재무팀 네 가지 부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는 업무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기본적으로 매일하는 홍보 업무입니다. 회사 공식사이트에 그 전 인턴생의 인수인계를 따라 매일 2-3개씩의 포스팅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포스팅 하는 글은 회사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외상장이나 중국 세무회계에 관한 전문가의 칼럼이 있고, 그밖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새롭게 개발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매일 포스팅 할 것들을 검색하고,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저도 새로 알아가는 지식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미팅기록입니다. 투자회사이니만큼 많은 고객기업이 상담을 하고자 찾아오거나, 직접 고객기업으로 찾아가야할 때가 많습니다. 한 시간에서 길게는 세 시간동안 진행되는 미팅에 참여해 미팅 내용을 기록하고 컴퓨터로 문서화해서 보고해야합니다. 미팅이 대부분 중국어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하는 업무 중 가장 긴장되고 어렵지만, 다양한 종류의 회사를 알아갈 수 있고, 인턴실습생에 흔치않은 기회라 얻어갈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는 번역입니다. 저번 달에 있었던 투자유치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명찰이나 숙지사항, 안내사항, 초청서까지 전부 한글로 번역하거나 중문화하는 작업을 맡아했습니다. 또 투자유치회 당일에는 중국인과 함께 사회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이외에도 커피타기부터 사무실 비품정리 등 소소한 일들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회사의 출납 업무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회사 분위기는, 각자의 업무가 정확하게 분담이 되다 보니 수평적이고, 자율적입니다.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또 일주일에 한번 점심시간에 다 같이 회식을 하는 것 말고는 따로 회식이 없습니다. 회식이 없다는 것이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소속감이 덜 들고, 결속력이 약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고, 하고 있는 일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진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많은 일을 맡고 조금씩 해내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매일 성장해나가는 자신을 보니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보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년 전 이곳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막연하게 꿈꿔왔던 해외취업을 이렇게 미리 직접 경험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코어 사업단의 해외인턴 프로그램에 대해 감사함을 느낍니다. 약 5개월 동안의 시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에서의 인턴 생활은 앞으로 저의 삶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인턴생활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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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창에서의 인턴십(중문과 한의석)

<그림 1 인턴기간 중 근무했던 사무실 자리>

무역부서에서 근무할 때 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메일을 잘못 발송할 뻔 하기도 하고 갑자기 컴퓨터 서버가 다운되어 반나절 작성한 문서가 날아가기도 했지만, 이쪽 직종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주기도 했던 잊을 수 없는 저의 자리입니다.

 

<그림2 근무회사 전경 (입구)>

첫 출근 날 입구를 들어가는 데 무척 긴장이 되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을 잘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하기도 했었습니다. 초반에는 모르는 것 투성이라 힘들기도 했었지만 배워가며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엔 두 달 여간 직원분들의 도움아래 잘 적응하여 나중에는 본래 다녔던 직장처럼 잘 다녔습니다.

 

<그림 3 자재관리 및 운반 업무를 한 물류부서에서>

40도에 가까웠던 무더운 여름 날 에어컨 없이 일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지만, 직원 분들이 모두 착하셔서 쉬는 시간마다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챙겨주셨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힘든 일 중 소소한 재미였습니다. 근무경험과 더불어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림 4 근무회사 전경 (내부)>

직원들 모두 다른 경로를 통해 그곳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저에게 많은 조언들을 해주셨습니다. 그 조언들은 제게 하나하나 다 의미 있는 말들이라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또한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림 5 시내 전경>

제가 근무한 허창 바로 옆에 중국의 교통중심지로 유명한 정주가 위치하고 있어 주말을 이용해 근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경험과 동시에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해외인턴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생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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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매너의 나라,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인턴십 (일문과 황지혜)

중학교 3학년 때, 왠지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게 즐거웠고, 같은 의미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게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여러 가지 언어들 중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게 일본어였다. 다른 언어에 비해 한국어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배우기 쉽고,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대부분의 어학 공부가 그렇겠지만 초반에 열심히 해 나가다 본격적인 단계에 돌입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나 또한 그랬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대학에 들어온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만 배우다보니 어떤 한계를 느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번 2017년도 1학기 오키나와 인턴십이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17일, 약 25주간(2017.3.1.~2017.8.17.)의 인턴십을 끝냈다. 내가 일한 곳은 오키나와의 중심지 나하시(那覇市)에 있는 가리유시 어번 리조트호텔(かりゆしアーバンリゾートホテル)이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하기 위해 항시 대기하는 벨(bellboy)과 프런트(front desk),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restaurant), 청결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는 드림하우징(ドリームハウジン), 그들을 위해 일하는 총무부 등 여러 부서들까지 이 중 내가 속해있던 곳은 레스토랑이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직원과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고객들이 있는 덕에 호텔은 항상 사람들이 뿜어내는 생기로 가득한 공간이다.

레스토랑에서의 인턴은 직원과 다를 바 없다. 디너(dinner) 시간대를 맞아 2시 출근과 10시 30분 퇴근을 하며, 디너의 시작부터 마감까지를 준비한다. 조식과 런치에 있어 차별화를 두고, 디너만의 고급스러움과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명 색깔이 달라지고, 테이블에 일일이 크로스(cloth)를 깐다. 직접 만든 왕관과 캔들(candle)까지 놓아주면 디너만의 분위기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언제나 고객들을 우선으로 그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회의를 열어,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을 시작하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디너가 시작되면 모든 직원들은 고객에 의해 움직이고 행동하게 된다. 비싼 코스요리와 세트메뉴 등 고객들이 요구하기 전, 그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며 주위를 돌면서 접시 상태를 살펴보고, 다음 요리를 준비한다. 일의 효율성을 내기 위해 모든 직원이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하며, 이런 것들을 통해 서비스 자세와 일본어 실력이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듯이 나의 인턴 첫날은 어제 있었던 일 마냥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 속에 동화되기 위해 몸에 익숙지 않은 유니폼과 정장용 구두를 신고 입에 경련이 나도록 미소를 지으며 미숙한 일본어로 고객들을 상대하는 '평소의 나'가 아닌 '사회에 나오게 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름대로 자신 있던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소통하지 못해 좌절감을 맛보게 되고, 모든 것을 처음으로 꾸민 몸이 불편함을 토로하며,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일에 실망감을 안게 되고, 생각보다 고된 일에 한숨만 내쉬게 된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 번이 넘지만, 나에게 있어 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끝냈다는 만족감은 모든 불만을 잊게 만든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늘 배운 것들을 활용해보고자 하는 노력과 끈기는 첫날의 절망감을 이겨냈다. 매일을 이렇게 노력과 끈기를 통해 성장해 나갔다.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레스토랑 내에서의 일 또한 언제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유리잔과 접시를 깨왔고, 순간의 실수로 고객들에게 민폐를 끼칠 때도 있었으며,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곤란했던 일도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실수에 대해 직원들은 꾸짖지 않고 말없이 같이 접시를 치워주었고, 잘못에 낙담해 있던 나에게 오히려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었다. 그들은 잘못과 실수에 대해 나무라지 않고, 스스로 반성할 시간을 주며 그들만의 방법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이들과 대화를 하며 나 또한 마음의 여유와 기회를 배웠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미성숙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타지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도 소중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만이 느끼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과거를 회상해 돌아보면, 모든 일이 재밌었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게 된다. 이번 인턴 또한 그러하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때까지 배웠던 일본어를 활용해 고객들을 상대했던 기억, 밤늦게까지 한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놀았던 기억,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로 출퇴근했던 기억, 내 이름을 기억해준 손님이 있어 뿌듯했던 기억 등 모든 행복했던 기억들을 모아서 하나의 소중한 보물로서 간직하게 되었다. 인턴 기간 중 분명 힘든 일과 괴로웠던 일도 있었지만 그것들 또한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한걸음 더 성장해 나가는 밑거름으로서 나에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나는 비록 한국에 돌아왔지만, 인턴을 통해 얻은 모든 것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앞날에 힘들고 고된 일이 있겠지만, 인턴을 통해 얻은 스킬과 인내력, 배려로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가보고자 한다. 내 인생에 있어 이런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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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의 파워블로거, 나야 나!

한국경영원, 중어중문학과 박성실

실습기관 소개
한국경영원은 정부지원 직업훈련 기관입니다. 직업훈련이란 구직자들의 취업역량을 높이고 취업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함, 또 현직자들의 직무역량을 높이기 위해 시행되는 교육과정의 교육비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사업입니다. 그리고 한국경영원은 그러한 교육을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정개발팀, 과정홍보팀, 교육생관리팀 등 직업훈련교육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여러 팀들이 유기적으로 협동하여 교육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형의 교육상품을 파는 기업의 특성상 교육상품에 대한 높은 이해와, 고객을 응대할 때의 서비스마인드가 필요로 하는 기관입니다.

현장실습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및 계획
정규학기를 다 마치고 공공연한 취업준비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학생이란 신분 하에 보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음을 제 스스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서 실무를 운행하며 저를 성장시키고자 현장실습을 신청하였습니다. 또한, 요즘 신입사원들의 퇴사 이유 1순위인 ‘기업에의 부적응’에 대한 걱정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처음 맡게 될 업무에 대해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 직장 내 상사와 동료들과의 관계에 적응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제 업무에 대해 그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여 기업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리를 차지하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근로자가 아닌, 가치 있는 근로자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싶었습니다.

기업에서의 업무내용 및 현장 적응 노력
제가 맡게 된 업무는 한국경영원에 개설된 온라인 강좌를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SNS 홍보였습니다. 교육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상품에 대한 홍보가 곧 마케팅이였습니다. 마케팅 중에는 가장 보편적인 SNS마케팅이지만, 본사에서는 지금껏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 전략을 수정하여 실행하는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게 주어진 제대로 된 업무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앉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간구하였습니다. 부서에서 SNS마케팅을 담당하시는 분과 끊임없이 회의하고 상의하여 전략을 뼈대를 잡고, 한번 시행해보자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한국경영원 오쌤원격평생교육원’블로그는 컨셉을 잡을 수 있었고 꾸준히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것이 제 업무가 되었습니다.

현장실습을 통해 배운점 및 보람
롯데백화점 대학생 마케터, 지역 내 뮤직페스티벌 서포터즈, 마케팅콘서트 서포터즈 등 홍보와 관련한 다양한 대외활동 경험이 있습니다. 돌아보니 이는, 저와 비슷한 연령대의 잠재적 고객을 직접 마주하는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이 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실습기간 동안 내가 책임지는 계정을 받아 블로그를 꾸미고 채워나가는 SNS마케팅 활동은 제게 마케팅 관련 직무 커리어를 한층 넓혀주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글은 곧 기업의 소리이기에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마케팅의 직무 특성인 ‘매력적일 것’을 잃지 않는 홍보물을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온라인내 정보를 접하는 연령대에는 제한이 없기에, 어느 연령대가 접해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홍보게시물 작성요령을 터득하였습니다.

진로탐색/취업과의 연계 경험담 및 취업성공을 위한 각오
한국경영원에서 블로그마케팅을 계획하고 이제 막 착수하려고 할 때에 현장실습생으로 들어가 해당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첫째 날엔 지시받은 업무가 없어 업무파악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둘째 날 오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습기간동안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나아가고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산하교육기관만이 가지는 특성과, 본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의무성에 대해 강조하며 교육상품과 연계시켜 홍보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 후, 10회 이하였던 게시물 열람수가 일 100회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담당자님은 고민과 열심에 대한 대가라며 칭찬의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본인의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때에 나타나는 성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앞으로 취업을 했을 때에도 이러한 자세로 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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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진로를 비춰준 현장실습

아시아문화원, 국어국문학과 염휘빈

실습기관 소개
아시아문화원은 아시아문화의 창의성과 다양성 개발을 통한 문화 관련 홍보·교육·연구 및 아시아 문화 관련 콘텐츠의 제작·유통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10월 설립한 준정부기관입니다.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 원형자원의 기획 및 연구·개발을 통해 직접 전시·공연·페스티벌 등의 형태로 창작·제작하고, 결과물인 문화콘텐츠를 국내 및 아시아 시장에 마케팅 및 유통하는 시스템을 갖춘 21세기형 국제문화예술 교류·협력기관을 지향합니다.

현장실습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및 계획
전공수업시간에 고전콘텐츠에 대하여 수업을 듣고 나서 ‘고전과 인문학도 콘텐츠화를 하면 매우 좋겠다.’라는 관심이 생겼습니다. 고전 민담에서 소스를 차용해 크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도 고전콘텐츠의 성공적인 사례였습니다. 문화콘텐츠에 관심을 갖던 도중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학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콘텐츠에 대하여 더 알고 싶었던 저는 조직 내에서의 업무의 처리과정과 실무적인 사무능력, 사업의 계획과 관리 등에 대하여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아시아문화원 문화사업팀에 지원하였습니다.

기업에서의 업무내용 및 현장 적응 노력
1주차에는 문화사업팀의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역대 월드뮤직페스티벌의 사진과 라인업을 보았고 2017ACC월드뮤직페스티벌의 전체적인 개요와 행사진행 자원 활동가들 모집을 주 과업 목표로 두었습니다. 자원 활동가모집을 위한 방안으로 SNS활용, 자원봉사홈페이지나 카페, 각 대학별 커뮤니티 등에 자원봉사자 모집공고를 올리며 신청자들의 현황을 유지하였습니다. 또 각 대학별 학생과에 자원봉사자모집에 대한 협조를 위해 공문을 발송하였고 전남대학교 단대별 게시판에 자원 활동가 모집포스터를 게시하였습니다.

2주차에는 적극적인 자원 활동가 모집활동을 위한 방안으로 부스운용계획을 작성하였고 담당선생님에게 많은 조언을 받고 부스운용기간 및 장소를 정하고, 배너와 현수막 제작을 진행하였습니다. 유인책으로 어느 판촉물을 사용할 것 인지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고 작성한 보고서를 팀장님께 보고 드리며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과 협조하여 중앙도서관 내에서 부스를 운용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신청서작성 및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포스터를 나눠 주었고 페스티벌 자원봉사자에 대하여 설명해주기도 하였습니다.(사진1,2) 또 전남대학교 일대에 학생의 유동량이 많은 곳에 포스터를 게시하여 현장에서 직접 정보를 접할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사진3,4)

3주차에는 아시아문화원에서 주최하는 2017ACC월드뮤직페스티벌의 자원활동가 ‘광월반디’모집 지원서가 접수 되는대로 현황을 유지하였고, ‘광월반디’내에서도 세부분류로써 홍보지원, 운영지원, 무대객석지원, 국제교류 로 나뉘며 각 파트별로 자원활동가 배치 및 국제교류 파트 전화인터뷰 진행, ACC웹사이트에 공고할 합격자현황 문서작업, 합격자 공고 후 문자알림 협조요청, 합격자 활동일정과 기타 문의사항 전화응대 등 의 업무를 하였습니다.

4주차에는 2017ACC월드뮤직페스티벌 자원활동가 ‘광월반디’의 전체교육 오리엔테이션 교육계획 수립하였으며 교육 자료집 작성 보조, 현수막 배너 제작 요청 등을 하였습니다. 2017ACC월드뮤직페스티벌 ‘반디밴드’모집홍보 및 지원서 접수현황 유지하였습니다. 자원활동가 ‘광월반디’의 오리엔테이션 현장 보조, 오리엔테이션 이후‘광월반디’ 간담회 참여하여‘광월반디’사전홍보 일정 공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석여부 확인 설문지를 작성하여 응답별로 현황 정리를 하였습니다.

‘광월반디’ 오리엔테이션 미참석자 개별연락 및 선발자 현황 유지, 2017ACC월드 뮤직페스티벌 해외아티스트 공연 및 체류일정 확인, ‘광월반디’ 전체공지 및 문의를 위한 연락방을 개설하여 자원활동가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축제홍보와 주변상권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주변상가와의 홍보 연계를 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발전 가능한 성공적인 지역축제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주최기관 직원뿐만 아니라 주변상가와 주민들 또한 그 역할이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함께하는 축제라는 점에서 정말 뜻 깊은 축제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현장실습을 통해 배운점 및 보람
하나의 큰 사업이더라도 그 내부에는 각각의 연결된 사업부문이 있고 그중 하나의 사업인 자원 활동가 모집을 1,2주차에 걸쳐 실습하였습니다. 어느 하나의 전반에 통용되는 이론은 없고 각각의 세세한 부분을 고려하여 각 사업별로 맞는 계획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축제홍보와 자원 활동가 모집홍보는 언뜻 보기에 같은 사업으로 보이지만 타겟, 홍보내용, 축제에 대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홍보활동에 필요한 장소협조와 공문발송 운용에 필요한 자원을 고려할 수 있었고 현황유지를 하기위해 엑셀과 한글을 이용하였습니다. 실무적인 사무능력이 조금은 향상 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발송할 공문의 내용이나 형식, 보고서의 양식과 내용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SNS 및 온라인상의 홍보활동을 하였지만 생각보다 지원자들의 수가 낮았습니다. 지역축제의 성공여부는 그 지역주민들의 자원봉사참가에 따라 달린다고 생각했기에 광범위한 온라인홍보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문화원 인근 대학생들을 타겟으로 하여 홍보활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2주차에서의 조선대학교 및 전남대학교에서의 부스운용 및 포스터부착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는 시점에서 자원 활동가들의 신청서를 계획인원까지 모두 모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온라인홍보활동이 효과적이라 생각하였지만 온라인홍보활동은 축제홍보에는 적합하나 자원봉사자 모집에는 그렇게 많은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인근 대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면 현장에서 질문 사항 등을 그때그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둔 것 같아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광월반디’ 지원 현황, ‘반디밴드’ 지원 현황, 지원서를 통해 합격자 선발 및 공고용 문서 등 문서작업을 하며 실무적인 사무컴퓨터 활용능력이 조금은 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이전에 작성된 문서를 보며 양식에 대하여 많은 참고가 되었고 이후에 문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광월반디’ 합격자 대상으로 하는 전체교육 오리엔테이션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소하나 책상 등의 물품하나에도 협조요청이 반드시 필요하였고 이후 감사대비 사진촬영도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참석 등록부 부스 운용시에도 참석자들의 동선과 작성서류 수량에 따라 배치가 효율적 이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작은 것에도 상대를 위한 배려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광월반디’ 자원활동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전에 편성한 조를 통해 인사와 공지를 하였지만 시간배분을 신경 쓰지 못하여 몇몇 조에는 짧은 시간의 대화를 하여 아쉬웠지만, 이전 광월반디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추후 회식이나 다과회 등의 형태의 간담회 주최를 건의 받아 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간담회 주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모집인원에 비해 중간이탈자들도 꽤 많았기에 계획된 인원선발은 중간이탈자를 고려하여 선정해야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콘텐츠를 기획, 유지 하려면 먼저 그 안에 있는 작은 사업 하나하나에도 많은 준비와 수고가 든다는 것을 현장에서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고 머릿속에만 담고 있던 막연한 생각들을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겼습니다. 아직 취업에 대하여 막연하거나 불안함을 느끼는 학우들에게 현장실습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진로탐색/취업과의 연계 경험담 및 취업성공을 위한 각오
8주라는 짧은 현장실습기간이지만 콘텐츠 및 공간 활성화사업을 기획 및 관리하는 문화사업팀 내에서 조금이나마 직접 계획안을 짜보기도 하고 그 계획안의 내용을 현장수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음 계획안을 짜고 간접적으로는 담당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협력업체와의 회의나 토의 등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일의 흐름 같은 값진 실무경험들을 얻었으며 실무적인 사무업무에 필요한 한글워드와 데이터관리를 위한 엑셀 활용법 등을 숙지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막연하게만 ‘콘텐츠에 대해 알고 싶다 ’ 는 마음에서 콘텐츠기획자가 되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싶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귀중한 현장실습의 경험을 살려서 콘텐츠기획자라는 진로를 꼭 달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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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해외현장학습 수기 - 오키나와 (사학과16 배가현)

해외현장학습 소감문(사학과16 배가현)

 

지난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오키나와로 해외현장학습을 다녀왔다. 현장학습을 가기 전에 자료집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자료집 준비 도중에 큰 갈등이 생겨 하마터면 완성하지 못할 뻔 했다. 하지만 이내 해결되었고 오키나와로 출발하였다.

첫째 날 도착 후 자유 시간에 동기들과 함께 나하의 번화가인 국제거리에 갔다. 국제거리에서 물건들을 사는데 그 동안 조금씩 배웠던 일본어가 이럴 때 유용하게 써져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키나와는 우리나라보다는 길거리가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키나와 현지인들도 친절하게 대해줘서 첫째 날을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었다.

둘째 날에는 슈리성, 긴죠우쵸 돌다다미길, 히메유리의 탑 그리고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둘째 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키나와 현지인분과 간담회를 한 것이었다. 간담회 동안 오키나와가 평화를 위협받는 상황이라는 것과 오키나와 주민들과 극우 세력과의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아 조금은 공감이 되었다.

셋째 날에는 츄라우미 수족관, 만좌모, 치비치리가마, 카데나 미군기지, 나가구스쿠 성터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명 관광지 오키나와.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학살의 흔적과 미군기지. 이번 해외현장학습에서는 오키나와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고, 오키나와를 마냥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국제거리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귀국하면서 ‘오키나와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되어 일본사를 공부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는 만족감과 ‘내가 아직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어서 일본 현지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볼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사학과에 입학할 때부터 해외현장학습을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번 오키나와 해외현장학습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사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일본으로 해외현장학습을 가면 주로 교토나 도쿄 등을 간다고 들어서 오키나와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의아했었다. 나에게 오키나와는 단순히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료집을 준비하며 오키나와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오키나와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 자리 잡던 곳이었고 일본 역사상 최초로 지상전이 펼쳐졌던 곳이자 아직까지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곳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오키나와 해외현장학습은 특이하지만 의미 깊었다.

또한 이번에 해외현장학습은 일본 전문 역사문화해설사 선생님과 동행해서 일본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국내현장학습의 경우 교수님들과 학우들만이 같이 가기 때문에 그 지역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서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서 역사문화해설사 선생님께서 오키나와에 대한 뒷이야기와 일본 문화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딱딱하다는 내가 가진 현장학습 이미지를 탈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키나와 현장학습은 관광지와 유적지 관람 일정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더욱 흥미로웠다. 그 동안 사학과의 현장학습은 유적지 관람이 대부분을 차지해서 많이 배울 수는 있지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관광지에도 방문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번 현장학습이 역사문화해설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육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 유적지뿐만 아니라 문화‧관광지에 대한 해설 방식도 함께 체득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 해외현장학습은 사학과에 입학한 이래로 가장 인상이 깊었고 기억에 남은 최고의 현장학습이었다. 이번 답사에 참여했던 임종명 교수님, 김성은 교수님, 조교 선생님, 대학원생 오빠들 그리고 수아 친구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자료집을 만드느라 무척 고생이 많았던 우상 오빠, 승혁 오빠, 정현 언니, 영호 오빠, 은서, 후경, 소라, 혜원, 혜인이에게 그 동안 고생했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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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해외현장학습 수기 - 오키나와 (사학과13 심우상)

해외현장학습 소감문(사학과13 심우상) 

일본에서 가볼만한 지역은 많지만, 오키나와만큼 매력적인 곳은 찾기가 어렵다. 오키나와는 섬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름다운 바닷가와 함께 여러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올해의 해외현장학습 지역이 일본 오키나와라고 들었을 때, 오키나와를 휴양지로 알고 있었던 나는 이런 휴양지를 가고 싶어서 해외현장학습을 신청했다. 그래서 준비 스터디를 갔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다.

하지만, 스터디를 통해서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오키나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가 많이 변했다. 우선 오키나와는 과거의 역사가 많은 고통을 가지고 있었고 제주도와 각별한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터디 중에서 현장학습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학습을 갈 때, 우리는 그곳을 외부인의 시각으로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외부인의 시각은 그 지역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 정보 습득에 그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교수님께서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것은 매우 성공적인 시도였고 현지인들의 시각으로 보는 오키나와를 알게 되었다.

스터디를 마치고 한국에서 출국해서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오키나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일본은 이전에도 와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본토보다 좀 더 관광객에게 익숙하고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키나와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었다.

현장학습을 간 곳을 전부 적을 수는 없지만, 치비치리가마, 히메유리 탑 그리고 평화기념공원이 제일 인상이 깊었다. 이 세 곳은 전부 오키나와 전투와 관련이 있는 곳이었다. 치비치리가마는 당시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장소였다. 히메유리 탑은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했지만, 이런 희생을 등에 업고 당시 기득권층에게 면죄부를 주는 장소였고 평화기념공원은 오키나와인들 스스로 기존의 일본에 있었던 폭력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기위해 노력하려는 것이 보이는 장소였다.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독특한 곳이었다. 류큐 왕국이후 일본에 강제로 통합되어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의 방패막이 되어서 전쟁의 피해를 겪은 곳이었다. 거기에 일본 국가의 폭력에 피해를 당한 곳이기도 했다. 이번 해외현장학습을 오지 못했다면 나는 오키나와를 그저 관광과 휴양을 위한 섬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런 폭력은 이제 동물들을 향하고 있었다. 돌고래쇼를 보고 있었을 때, 이 돌고래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돌고래를 가두고 힘들게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직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학습이라는 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갔지만, 평소 여행을 갈 때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 것 보다는 그곳이 겪었던 역사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해외현장학습을 마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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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해외현장학습 수기 - 秦昰旅行記(사학과14 박진하)

秦昰旅行記(사학과14 박진하)

진이라는 나라는 오랜 기간 나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우리나라의 고대국가도 아닌 중국의 고대 국가가 나에게 감동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처음 진을 알았던 그 때부터 진의 이야기라면 눈이 가고 시황제의 이야기라면 귀가 갔다. 그래서 이번 하계 해외현장학습의 목적지가 진시황제의 ‘서안’임을 알았을 때 나는 안 갈수가 없는 마음이 되었다. 현장학습이 끝나면 진에 대한 감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현장학습을 기다렸다. 현장학습이 가까워질수록 직접 진시황을 마주치는 것 같은 기대감도 천천히 커져갔다.

이번 하계 현장학습에서 다룬 진의 유적은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그리고 진시황의 지하궁전이다. 출발하기 전 먼저 둘러볼 유적과 박물관 등을 설명하는 책자를 현장학습에 참여하는 인원이 제작하였다. 내가 현장학습에 참여한 목적이 진시황릉에 가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책자에 실린 내 글 역시 진시황릉과 지하궁전에 대한 것이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내가 오랜 기간 관심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이미 아는 것을 바탕으로 즐겁게 글을 쓸 것이라 생각했고 자료 또한 많아서 수월하게 글을 완성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즐겁게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진시황릉에 대한 연구는 병마용갱을 제외하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자료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능의 크기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능의 크기를 추측하는 글을 보았을 땐 과연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완성된 글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연구보다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지하궁전의 모습과 진시황제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쓰면서 자꾸 억울한 마음과 함께 중국이 진시황릉의 연구를 아직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글을 완성하고 나서도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 이에 대해 알아보는 중 느린 진시황릉의 연구의 진행이 서안의 기술력 부족 때문이라고 하는 글을 보았다. 아마 진시황릉은 중국의 소중한 보물단지와 같아서 쉬이 뚜껑을 열어보지 못 하나 보다. 그리고 지금 파헤쳐서 제대로 연구를 못 하는 것보다 미래의 더 발전된 기술로 발굴을 하는 것이 진시황릉을 연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더 좋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죽기 전에는 진시황릉에 관한 발굴이 많이 진행되어서 나중엔 진시황릉을 직접 들어가보고 싶다.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지하궁전의 방문은 중국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더운 날씨에 잠도 부족했지만 어서 빨리 병마용을, 그리고 진시황을 만나고 싶었다. 오전의 일정을 끝내고 드디어 나는 「사기」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는 지하궁전에 발을 딛었다.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의 지하궁전에는 자동으로 발사되는 활과 화살, 강과 산, 별과 달 그리고 꺼지지 않는 초가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지하를 깊게 파내는 것도 어려운데 그 안에 강과 산을 만들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을 말 그대로 궁전처럼 만든 것은 죽음 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어서도 ‘황제’로 남기 위해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는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서 머물 곳을 화려하게 짓는다면 죽어서도 황제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자본과 많은 노동을 투입하여 몇천년이 넘은 지금도 경탄이 나오는 무덤을 만든 것이 아닐까.

진시황의 내세관을 생각해보며 나는 지하에 축조된 지하궁전으로 들어갔다. 지하궁전으로 이어진 복도의 그림들은 나를 정말로 진시황의 지하궁전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지하궁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깊은 지하의 탁 트인 공간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높은 산과 하늘에 박혀있는 별이었다. 그리고 바다와 강으로 보이는 모형 한 가운데에 산의 높이에 다다르게 놓여진 관은 이 지하궁전의 주인공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사실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를 보이는 지하궁전이었지만 그래도 「사기」의 내용은 거의 표현된 것 같았다.

지하궁전을 뒤로하고 진시황릉 중 그나마 발굴이 많이 이루어진 병마용갱으로 향했다. 사실 가장 가장 많이 기대했던 곳이 바로 병마용갱이었다. 진시황릉의 유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병마용이기도 하며 심지어 서안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 역시 병마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착한 순간부터 계속 병마용을 생각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언제 병마용을 갈지, 이동을 하면서도 병마용의 순서는 아직 멀었는지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래서인지 마침내 병마용갱으로 가는 때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병마용은 무덤부장품의 일종으로 흙으로 빚은 인형이다. 원래 고대에 있던 장례풍습인 ‘순장’은 죽은 자를 위하여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시종들을 무덤에 함께 묻는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의 무덤은 사람을 직접 묻지 않고 대신 흙인형을 묻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다 고대엔 노동력이 귀중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묻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진시황의 사후를 위한 병마인 병마용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개수가 매장되어 있다. 갱의 개수도 여러개이며 그 갱마다 배치된 병마용의 기능 역시 다양하다. 병마용에 대한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왔다. 특히 나는 병마용의 얼굴 생김새가 일치하는 것이 없으며 크기조차 일반인에 비해 크다는 사실 때문에 병마용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었다. 어떤 방식으로 병마용을 만들었을지 상상하며 병마용갱의 입구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1호갱에 들어갔다. 바깥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그리고 수많은 병마용들이 보였다. 정말 그 광경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직접 보니 더 거대했던 병마용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대열을 갖추어 서있는 모습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웅장하며 엄숙해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한동안 말을 잃고 넋놓아 바라보기만 하였다. 함께 동행하였던 이성원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병마용들은 머리와 몸, 팔과 다리를 따로 구운 후 마지막에 몸통에 나머지를 끼워넣어 완성한다고 한다. 또, 몇몇 병마용들을 보면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처음엔 색색의 병마용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교수님의 설명을 따라 병마용들의 이모저모를 보던 중 다른 병마용과 달리 팔의 비율이 조금 이상한 병마용을 발견하였다. 교수님은 과거 진시황의 병마용들을 만들 때 장인들이 주로 병마용을 만들었겠지만 장인들만 만들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일반인의 손을 빌렸을 것이라고 하며 그 병마용에 대해 설명하셨다. 병마용이 전시된 양쪽 길로 이동하며 아직 복원되지 않은 병마용들도 보고 각자 맡은 것이 달라 옷의 생김새도 다른 점도 확인하며 1호갱을 나왔다.

3호갱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병사들이 아닌 지도자 계급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병마용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회의하는 듯 서로 마주보고 서있기도 했고, 중심이 되는 병마용을 호위하듯 서있기도 하였다. 이 곳은 1호갱처럼 공격적인 분위기가 아니라서 군대의 긴장감은 덜하였다. 하지만 무언가 짓누르는 듯한 분위기가 갱 내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3호개은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관람을 마쳤다.

다음으로 간 2호갱은 특수한 임무를 가진 병마용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특히 2호갱에서 발굴된 궤사용은 보존 상태가 좋은 것 등의 이유로 장군용과 함께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궁수용을 기대하며 2호갱으로 갔다. 2호갱은 1호갱의 병마용과 다르게 생긴 병마용이 많았다. 잔뜩 부서진 병마용들이나 완성된 병마용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동물들처럼 보이는 용들도 많았다. 2호갱에서 특히 신기했던 건 나무가 돌로 변한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벽인줄 알았던 것이 과거엔 나무였고, 또 그 안에는 병마용이나 다른 흙인형들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정말 신기했다. 직접 내려가서 만져보며 나무의 결이 남아있는 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 한게 아쉬웠다. 2호갱을 쭉 들어가면 완성도가 높고 흔치 않은 병마용들을 따로 전시해 놓은 곳이 있었다. 그 곳에는 장군용과 궤사용을 비롯하여 기마병, 독특한 자세의 병사용이 있었다. 이 전시장을 처음 갔을땐 그 정교함에 한 번 놀라고, 그 크기에 다시 놀랐다. 분명 1호갱에서 병마용의 전부를 확인한 것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감동이 더 물밀 듯 밀려왔다. 특히 장군용은 사진으로도 많이 보았고, 길거리에서 장식품으로도 많이 보았는데 실물을 직접 보니 잠시 말을 잃을 정도였다. 흙인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품에 나는 병마용을 제작한 장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일었다. 한동안 그 장군용을 감상하다 이어서 궁을 쏠 준비를 하는 자세의 궤사용, 말과 함께 있는 기마병 등을 보고 2호갱을 빠져나왔다.

2호갱의 지하에는 청동마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청동마차는 두 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진시황이 실제로 타고 다니던 마차를 만든 것이다. 진시황은 상황에 따라 마차를 바꿔 탔으며 이 두 개의 마차 중 뒤쪽에 있는 마차에서 진시황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청동마차와 말들, 마부는 흙으로 만들어진 병마용처럼 크기가 크진 않았지만 섬세한 것은 같았다. 특히 나는 진시황이 죽었을 것이라는 청동마차가 유독 눈에 들어와 한참을 감상하였다. 어둠 속에 전시된 청동마차. 지하의 모든 빛은 청동마차를 향해 비춰졌다. 그 빛의 가운데에 있는 청동마차는 몇 천년이 지나 많이 녹슬어 있었다. 청동마차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닫혀져 있었는데, 녹슬었기에 조금만 건들면 열릴테지만 나는 그 문이 꽉 닫혀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닫혀진 문, 그 안에서 누군가가 밖을 내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 곳에서 진시황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고 들었기 때문일까, 매서운 눈초리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2호갱까지 감상한 후 우리는 마지막으로 진시황릉의 중심이라고 추정되는 언덕으로 갔다. 진시황릉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그곳에 관이 있는 지는 알수가 없으며 언덕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산에 가깝다. 과거에는 이 진시황릉을 오를 수 있었지만 2010년부턴 금지되었다고 한다. 오르지 못 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무덤을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게 느껴졌다. 우리는 진시황릉에 도착해서 작은 자동차를 타고 진시황릉 주변을 크게 한바퀴 돌았다. 초록 나무로 우거진 진시황릉은 산과 흡사하게 생겨서 진시황릉이 맞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손에 잡힐 듯 가까워 금방이라도 그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우리는 진시황릉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아 조금 아득하게 느껴졌다. 길지 않은 진시황릉의 감상을 마지막으로 진시황과의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진시황의 무덤, 진시황의 병사들은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축조물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진시황릉은 아직도 발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감탄이 몇 배로 커질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뜻깊은 유적인 진시황릉의 주체는 흔히 진시황이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 과거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시황릉을 보는 것은 진시황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시황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진시황릉을 직접 확인하고 마음 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이는 진시황을 향한 감동이 아니었다. 진시황이 아닌 진시황릉을 축조한 진의 백성들에 대한 감동이었다. 현장학습이 진행될수록 나는 진시황보다는 진의 백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비율이 잘 맞지 않은 병마용, 모두 다른 병마용들의 생김새, 상상조차 안 되는 지하궁전의 모습……. 그들의 노력이 진시황릉의 곳곳에 배어있었다. 그렇다, 진시황릉은 진시황이 만든 것이 아니라 진의 백성들이 만든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나는 직접 진시황릉을 보고 나서야 그것을 피부로 마음으로 느꼈다. 비록 그들은 강제로 동원되었던 것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진시황릉은 그들의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매우 큰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이번 현장학습으로 느낀 감동, 그리고 경외감은 그들이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진시황릉을 간다면 그때는 처음부터 그들을 염두하며 진시황릉을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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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해외현장학습 수기 - 중국, 서안을 걷다(사학과15 김정현)

중국, 서안을 걷다(사학과15 김정현)

누구든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쳤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 황하(黃河). 황하가 운반하는 최상의 진흙은 범람을 거듭하며 황하 주변의 땅을 비옥하게 하였고 이 황하의 중류 유역에 서안(西安, Xian)이 위치한다. 위에서 내려다본 서안은 북으로는 고원, 남으로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평원으로, 황하의 여러 지류가 모여 있어 수원(水源) 또한 풍부하다. 비옥한 토지, 풍부한 수원, 자연의 장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로서의 서안은 중국 고대 역대 왕조의 수도로 역할을 했다. 서주(西周)때는 호경, 진(秦)때는 함양, 그리고 한(漢)·수(隋)·당(唐)에 이르러서는 장안으로 불리면서 서안은 대륙의 중심으로 자리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글로 배웠던 역사의 현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에 관심이 깊은 나로서 이번 중국 서안 방문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중국과 한국은 고대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역사·문화·경제·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기에, 동아시아의 역사를 배우면서 중국을 경시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황하의 호구폭포를 통해 중국 문명의 탄생을 엿보았고, 진·한대의 도용(陶俑)을 비교하면서 왕조의 흥망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당대에 건립된 이슬람 사원과 명대의 성벽 위를 걸었으며, 의외의 공간에서 중국 근현대의 역사적 장면을 마주했다. 2016년 무더운 여름, 하계 해외현장학습을 통해 선사 황하 문명부터 근현대시대까지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중국 서안을 눈에 담았다.

 1. 중국 문명의요람 <황하 호구폭포 & 반파박물관>

호구폭포는 황하의 여러 지류(支流)가 한데 모이는 곳으로, 황하의 격동적인 움직임과 거대함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일행은 숙소가 있는 서안 시내에서 호구폭포까지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 도착했다. 서울에서 한반도 최남단인 해남까지 왕복 9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얼마나 광활한지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황하를 본다는 기대감과 ‘강물이 얼마나 누렇길래 이름까지 황하일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호구폭포를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실제로 마주한 황하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황하의 물줄기는 누렇다 못해 거무튀튀했으며, 마치 초콜릿이 강을 이뤄 꾸덕꾸덕 흐르는 듯했다. 위 지평선으로부터 황하의 지류들이 한 대모여 엄청난 광음을 내며 쏟아지고 있었다. 호구 폭포 밖에 작은 웅덩이에 진흙물이 고여 있어 들어 올려보니, 진흙이 손가락 사이로 흐를 정도로 흙의 입자가 곱고 부드러웠다.

최양질의 진흙이 흐르는 이 황하를 따라 다양한 선사 문명이 누층적으로 발전했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점은 앙소문화와 그의 토기이다. 다음으로 방문한 <반파박물관>은 선사 유적지 박물관으로, 앙소문화의 대표적 유적지인 반파촌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신석기 시대의 여러 유물 중에서도 역시 눈에 띄는 것은 당연 토기였다. 한국의 선사 문명의 토기는 표면이 거칠다면, 황하가 운반한 고밀도 진흙으로 빚어진 토기의 표면은 부드럽고 윤기가 났다. 그 위에 그려진 물고기 무늬는 아마 선사인(先史人)이 황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형상화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2. 중국 황제의 무덤 <병마용갱 & 한양릉박물관>

이번 하계 해외현장학습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 진시황제의 병마용 갱이었는데, 한양릉 (漢陽陵)박물관과 함께 비교해 관람하면서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병마용 갱은 죽은 진시황제를 사후에서도 지키기 위해서 제작된 지하 궁전의 군대이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을 진시황제와 함께 묻을 수 없기에 흙으로 실제 사람의 크기로 빚었는데, 그 사실적인 표현과 거대한 규모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병마용 갱을 둘러 싼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는 병마용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병사의 지위에 따라 동작과 복장, 나아가 머리 스타일까지 제각각이었고, 얼굴의 골격과 모양에 따라 병사의 출신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었다. 가장 크고 많은 병마용을 갖추고 있는 1호 갱의 전면에 섰을 때, 거구의 병마용 군대가 마치 나를 향해 진군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고 그때의 기분을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흙으로 빚은 인형인 도용(陶俑)은 진시황제의 병마용 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나는 진(秦) 다음으로 건국된 한나라의 도용들을 보기 위해 <한양릉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한양릉은 한나라 초기의 제 6대 황제인 경제(景帝)와 황후 동영의 합장릉이다. 이곳에서는 진시황제의 병마용 갱과는 또 다른 도용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시황제의 병마용은 군대의 모습을 실제 사람의 크기로 제작되어 근엄하고 엄격해 보인다면, 한양릉의 도용은 그의 1/3 크기로 인형과 같은 모습의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인다. 또한, 병마용에서는 병사와 전투용의 말에 한정되는 군사적인 모습만 확인할 수 있지만, 한양릉에서는 여성, 가축, 동물도용 그리고 생활 토기 등이 함께 발견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시간의 간격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시황제의 병마용과 한양릉의 도용의 모습에는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진시황제의 병마용 갱과 만리장성 건설 등의 대규모 사업은 곧 백성들의 몫이자 고통이었다. 백성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무거운 부역에 참여해야 했고 엄청난 세금이 동원되었다. 결국, 진시황제 사후 백성들의 불만이 중국 최초의 농민 반란인 진승·오광의 난으로 표출되었고 진나라는 멸망한다. 이와 같은 진나라의 멸망과정을 지켜본 한(漢)의 지배계층은 멸망의 요인을 답습하지 않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의 도용이 진나라의 병마용에 위세가 눌리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3. 세계제국 당나라를 만나다 <청진대사>

역사를 배우는 데 있어서 종교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인데, 이는 종교가 한 명의 사람을 뛰어넘어 집단의식과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주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령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의 사례를 보면 무슬림은 자신의 일평생 이슬람의 5대 의무를 수행하며 쿠란의 법에 따라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이처럼 종교는 인간의 정신적 안식처인 동시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형성하고 제한한다.

때문일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종교를 둘러싸고 잦은 전쟁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 당나라만큼은 달랐다. 당 왕조는 중국 전통 왕조들 중 가장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왕조였다.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의 문화와 문물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지금의 서안)으로 집중되었다. 외국인과 함께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이교도가 함께 전래하여 당 제국으로부터 다양성을 인정받았다.

나는 당 왕조 때 건립된 이슬람교의 사원인 청진대사(淸眞大寺)를 방문했다. 청진대사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건축된 이슬람 사원으로, 당 현종 천보1년(742)에 건설되어 지금으로부터 1,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까지도 청진대사는 중국의 무슬림들에게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슬람의 지식을 전수하는 학교 역할을 하고 있다. 청진대사에서는 둥근 돔과 모스크와 같은 현재 이슬람의 건축양식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불교 사원인가 할 정도로 의심할 수 있는데, 이는 이슬람의 건축양식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대의 무슬림들이 중국의 전통양식을 본떠 축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진대사에서는 이슬람의 문화와 당대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청진대사의 예배당의 지붕은 돔을 대신해 푸른빛이 감도는 기와가 얹혀 있고,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동아시아의 건축양식을 띄고 있었다. 반면 교회나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조각상이나 인물화를 찾아볼 수 없었고, 예배당은 동서로 길쭉하게 뻗어있다. 이는 이슬람에서 신을 인간·동물로 그림이나 조각으로서 표현하는 것이 금기이고, 알라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율법에 근거해 예배를 드릴 때도 자리에 위계를 따지지 않고 ‘ㅡ’자로 나란히 서는 이슬람인의 문화가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당 왕조의 국제성은 예술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방문한 <섬서 역사 박물관>과 <한양릉박물관-특별전>에서 쉽게 당삼채를 만날 수 있었다. 당삼채는 당 제국(618~906)의 도기로, 주로 당시 귀족들의 장례용으로 제작되어 묘릉에 부장되었다. 남녀의 인물상에서부터 신상, 진묘수, 그리고 각종 명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당대 귀족의 생활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 중 서역인의 모습을 당삼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리부리한 눈과 큰 코, 이국적인 형상의 당삼채는 당나라과 장안이 세계제국이자 국제도시임을 함축하고 있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4.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서안성벽>

서안을 돌아다니면 자주 서안성벽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서안 시내의 중심에 서안 성벽이 있기 때문이다. 서안성벽은 명나라 초기에 건설되었는데 본래 당나라 장안황성의 기초 위에 성벽을 올렸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의 공사를 걸쳐 방어체계를 구축했으며, 현존하는 중국의 성벽 중에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나다.

서안성벽은 우리나라의 수원화성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서안성벽과 수원화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성벽을 구성하는 형식에 있다. 서안성벽은 성벽 기초부터 그 위의 전각까지 모두 흙으로 구운 작은 벽돌들을 촘촘히 쌓아 올린 데에 비해, 수원화성은 1m에 달하는 큰 화강암으로 성벽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작은 벽돌로 쌓아 올렸다. 서안은 질 좋은 진흙이, 한반도는 단단한 화강암이 풍부함으로 두 성벽 다 주변 자연환경의 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성벽을 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서안성벽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서안 시내의 중심을 감싸고 있으며 전체둘레가 무려 13km에 이른다. 서안성벽을 따라 서안 시내의 모습을 천천히 보고 싶었지만, 땡볕 아래에서 그 길을 걷기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 대여가 가능하다고 하니 자전거로 서안성벽 위를 달려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서안성벽 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와 현대의 조화’였다.

명대에 지어진 성벽 위에서 높은 빌딩으로 가득 찬 서안 시내를 바라봤다. 서안성벽의 내부와 외부 모두의 공간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안과 밖을 자유롭게 통행하는 버스와 사람들이 보였다. 옛 건물과 그 너머에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규모와 역사적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현대와 과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서안성벽은 곧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날이 멀지 않다고 느꼈다.

5. 중국의 중세와 근대가 공존하는 역사적 공간 <화청지>

화청궁(華淸宮)으로도 불리는 화청지는 본래 온천으로 유명한 곳으로, 여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주나라 때부터 이곳에 왕실의 별장이 만들어졌고, 이후 진·한·수나라를 걸쳐 당나라 현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화청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로 유명하다. 당 현종은 통치 말까지 양귀비와 화청지에서 머물었기 때문에, 당 현종과 양귀비가 이용했다는 욕탕이 남아 있다.

한편 화청지는 당 후기 안사의 난으로 현종이 궁을 버리고 피신하자 점차 황폐해져 갔지만, 근대에 들어서 다시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1936년 12월 12일 서안사변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산군 토벌을 위하여 섬서성 서안에 주둔 중인 장쉐량과 휘하의 만주군이 독전(督戰)을 위해 경내의 오간청(五間廳)에서 머물던 장제스를 구금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했다. 이 사건을 결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對) 일본 전쟁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제2차 국공합작’을 타결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긴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다르고 이질적인 역사의 현장을 한 공간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특이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너무 넓어서 입구에서부터 한참 헤맨 끝에 발견한 화청지 욕탕. 역시나 붐비는 관광객들의 물결에 휩쓸려 허둥지둥 관람할 수 밖에 없었다. 당현종의 연화탕(蓮華湯), 양귀비의 해당탕(海棠湯)과 더불어 관리들의 욕실인 상식탕(尙食湯), 태자탕(太子湯)등 여러 욕탕이 있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보보경심;려>에서 나오는 다미원의 욕탕의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욕탕 뒤로 넘어가서 많은 전각들 사이에 있는 오간청(五間廳)을 찾았다. 오간청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에 제2차 국공합작의 과정과 관련 인물들의 설명이 부착되어 있고, 오간청의 벽면의 총탄 자국은 그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 주는 듯 했다.

하계 해외현장학습을 마치면서

앞서 소개했던 방문지 이외에도 섬서성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섬서 역사 박물관>, 한나라 무제의 대외업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무릉 박물관>, 중국 불교 최대의 성지인 <법무사>, 비석으로 이루어진 <비림 박물관> 등등 서안의 이곳저곳을 방문했는데 함께 소개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비단 A의 역사가 A만의 것으로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여러 국가는 흥망성쇠를 거듭하는데, 대부분 비슷한 맥락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잘못을 거듭하지 않기 위한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마치 서안성벽에서 수원화성이 떠오르는 것처럼 의외의 곳에서 자국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나 중국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력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번 하계 해외현장학습을 통해서, 한반도를 벗어나 동아시아 유교·불교·한자 문화권의 중심이 되었던 중국을 살펴보았다. 중국은 ‘대륙’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어디를 가든지 거대하고 웅장했다. 중국 음식을 직접 먹어보니 왜 중국인이 ‘차(茶)’를 사랑하는지도 깨달았고, 온종일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를 걸어보니 중국인들이 왜 목청이 높은지도 짐작이 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중국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바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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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드는 사람 - Hewlett Packard Enterprise 기업...

손을 드는 사람
- Hewlett Packard Enterprise 기업 방문 수기

 휴렛팩커드와의 첫 인연은 코어사업단의 커피톡 멘토링에서 시작되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멘토링이라고 하여 한국과는 어떤 점이 다를지 기대가 되었다. 멘토링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작 전 온인선 팀장님께서 보여주신 동영상이었다. 어떤 내용을 시사하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물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이 손을 들고 도움을 청했기에 변화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2시간 동안 학생들의 질문에 성심 성의껏 답해 주셨다.
 나도 모르게 지방대 학생이라는 생각으로 나의 가능성을 낮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링 내내 동기부여가 되었고 외국계 기업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느꼈다. 두 분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들의 이야기에 경청해 주셨고 진심으로 조언해 주셨다. 멘토링이 끝난 후 이런 생각들을 눌러 담아 감사의 연락을 드렸더니 팀장님께서 회사로 초대해 주셨다.

 평소 여의도를 지나다니며 높은 빌딩 안에는 누가 일을 하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좋았던 점은 직접 느낄 수 있던 회사의 수평적이지만 체계적인 문화와 한국기업과의 구조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때는 전중훤 전무님과 박대범 부장님께서 오셔 함께 면접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톡 멘토링과는 다르게 조금 더 편한 분위기 속에서 평소에 관심 있었던 직무와 사회공헌분야 같은 부분도 여쭤볼 수 있었다. 면접을 대비해서 답변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평소에 친구들과 논리적으로 이야기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에는 과거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회사에서는 미래에 함께 일 할 직원을 뽑는 것이므로 미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면 더욱 좋다고 하셨다. 직무 부분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선배로서 얘기를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고충에 대해 조언을 얻을 수 있어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팀장님께서 보여주신 동영상처럼 우리는 손을 들어서 기회를 만들었고 이번 만남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계속 손을 들어 도움을 구하고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흔쾌히 시험이 끝나고도 다시 방문해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해 주셨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팀장님, 전무님, 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 코어사업단 교수님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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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서 온 편지-LG Chem (철학과 서예원)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에 재학중인 서예원 입니다. 
  
  저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2월, 6개월간 LG화학 독일 법인의 전기차 배터리 마케팅 부서에서 인턴십 활동을 하고있습니다. 4학년 2학기에 본 프로그램을 다녀 온 거라 취업 준비가 눈앞에 닥친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인턴 활동은 미리 사회를 경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직원이 아닌 오히려 인턴이기에 한발짝 떨어져 회사 환경과 생활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모든 일에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함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 과장님, 부장님께서 누누이 하시는 말씀이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회사에서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어떤 차장님께서는, 한 개인의 직무 능력이 뛰어난 것 보다 다른 사람과 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내며 회사에서도 선호한다고 하신 것이 가장 생각에 남았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회사지만 일단 한국 회사이기에 업무의 대부분이 영어(저는 독일어를 하지 못하고, 현지 채용인 들을 제외하고는 주재원분들도 영어로 소통을 합니다)사용을 기반으로 하는 것 외에는 한국의 직무 환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인들 간에는 상하관계가 분명했지만, 독일인과 한국인 혹은 독일인과 독일인 사이에서는 상하관계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습니다. 마트나 음식점, 역 어디를 가든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그래도 독일어를 알았더라면 훨씬 생활이 편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한번, 인턴으로 한번 간 적이 있는데, 그 때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고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며 살아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생활하며 처음으로 해외거주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거의 제 인턴 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새로운 인턴을 모집하고있으며, 채용 담당자인 과장님과 함께 이력서를 보고 지원자들과 전화면접하는 것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력서에 오타가 있거나 회사명을 잘못 적으면 더 보지도 않고 바로 종이에 X자가 쳐집니다. 가령 저희 회사는 LG Chem인데, LG Chemical이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회사명을 틀리는 실수를 누가 하나 하지만 의외로 많다고 하셨습니다. 과장님께서 일단 서류에 통과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이력서는 그저 종이에 불과하다고 하시며 첫 마디인 “안녕하세요”부터 이 사람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사람인지 아닌지 느껴진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전화면접 하는 것을 함께 들으니 어렴풋이 그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틀에 박힌 상투적인 대답이나 암기한 느낌이 드는 답변을 피하기 위에 예고없이 전화를 걸어 면접을 보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무엇을 유의해야할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열정적이고 자신 있는 사람은 목소리 톤부터 달랐습니다. 역시나 그랬던 분들이 면접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취업을 준비할 때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잘 활용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해외 인턴을 생각하고 지원하려는 분들께서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고 나 자신을 발전시키느냐는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 

 

(* 서예원 학생이 독일 생활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다양하게 보내왔습니다.)